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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2030잠금해제] 화해와 치유의 제물 / 홍승희

등록 2016-09-04 17:22수정 2016-09-04 19:02

홍승희
예술가

밤새도록 남편에게 맞던 아내는 다음날 꽃을 들고 와 무릎을 꿇은 그를 용서하고, 화해하고, 평화를 되찾는다. 데이트폭력, 부부폭력의 사이클이다.

그는 그녀의 입을 막으려고 화해와 평화를 만들었다. 고통의 세월에게 꽃 한송이를 쥐여주면서, 화해와 평화의 제물이었노라고 말한다. 고통에게 화해의 자장가(혹은 마취제)를 불러준다. 분노로 대응하지 말고 화해의 언어로 말하자고 다정하게 강권한다.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동의 없이 ‘화해와 치유 재단’을 만든 것처럼.

화해와 치유의 재단(齋壇)에는 제물이 필요하다. 제물은 여자다. 인류는 매일 차별과 폭력을 저지르고도 2000년 넘게 살아남았다. 비법은 희생제물이다. 가족과 국가의 재단에서 여자를 제물로 바쳐 멸망을 면피해왔다.

가장 오래된 재단은 가족이다. 제물은 모성이다. 제물이 되길 거부하는 여자는, (모성을 지켜야 할) 여자가 (혹은 여자마저) 나를 무시한다는 이유로 길에서 죽임 당하기도 한다. 그래서 여자는 원치 않는 임신을 해도 (남편이 아닌) 남자와 ‘섹스 한 대가’로, 혹은 ‘국가 생산력’을 위해 자궁에 생긴 세포를 낳아야만 한다. 척추와 골반이 뒤틀리는 출산을 감내하면, 모성의 신전에 모셔진다. 그녀의 이름은 지워지고 대신 어머니라는 여신이 된다. 여신은 맞아도 복수하지 않는다. 돌봄노동의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다. 비명을 지르지 않는다. 눈물도 터뜨리지 않는다. 그저 평화를 기도하거나, 숨죽여 흐느낀다. 너그러운 어머니의 사랑은 가족을 지탱하고, 자본과 씨름하는 남편을 지탱하고, 아버지가 될 아들을 지탱하고, 어머니가 될 딸들을 지탱하고, 산업화를 지탱하고, 군대를 지탱하고, 국가를 지탱한다.

다음으로 오래된 재단은 국가다. 제물은 여자다. 여자는 국가의 국민과 군인을 위안하는 제물이다. 얼마 전 통장으로 제물의 대가가 들어왔다. 108억원. 국가는 생존 제물을 수술하다가 말고, 피가 철철 흐르는데 봉합도 안 한 상태에서 수술을 멈췄다. 살아 있는 제물은 아파서 생비명을 지른다. 제발 끝까지 수술을 마쳐달라고, 아니 봉합이라도 해달라고 애원해도 국가는 끄떡없이 수술을 멈췄다.

제물이 자기도 인간이라고 말하고 있다. 폭력의 세계를 지탱해온 모성이 비명을 지르고 있다. 데이트폭력을 고발하고, 고통을 증언한다. 김포공항 청소노동자들은 일터에서의 성추행을 폭로하고, 삭발하고 단식을 시작했다. 부엌에서, 안방에서, 화장실에서 수도꼭지를 틀고 쏟아내던 눈물이 광장에서, 일터에서, 거리에서 줄줄 샌다.

당신이 너그럽지 않았으면 좋겠다. 가족이나 평화나 화해나 치유 따위에 갇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랑의 이름 말고, 모성의 이름 말고, 맨발로 선 핏덩어리 인간으로 마당에서 광장에서 거리에서 무사히 살아 있기를. 눈물과 비명을 계속 누수시켜 폭력의 세계를 고장내버리기를.

고정희 시인은 ‘어느날의 창세기’에서 이렇게 울었다. ‘핏물이 밥사발에 범람하지 않는 것은/ 일종의 너그러움일 거야/ 세계인의 신음소리가 하늘을 덮지 않는 것은/ 일말의 너그러움일 거야/ 돌들이 일어나 소리치지 않는 것은/ 너그러움일 거야/ 어머니가 방생한 너그러움/ 임신한 여자가 담보 잡힌/ 너그러움일 거야/ 등뼈를 쓰다듬는 너그러움/ 살기를 풀어내는 너그러움/ 아아 우주의/ 너·그·러·움·일·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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