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쓰메이칸대 경제학부 교수 아베노믹스의 기초를 제공한 것으로 유명한 하마다 고이치 전 예일대 교수가 지난주 일본을 방문했다. 그는 여전히 낙관적이었지만 지난 6개월 동안 아베노믹스가 성공하지 못할 가능성도 보인다고 말해서 주목을 받았다. 특히 그는 국채금리가 이렇게 낮은데도 엔화가 강세를 보여서 실망했다며, 일본은행의 외국 국채 매입 등 외환시장 개입도 생각해볼 만하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올해 초 1달러에 약 120엔이던 엔화 환율은 계속 절상되어 현재 104엔 수준이다. 아베노믹스로 급락했던 엔화는 지난 2월 마이너스 금리 도입에도 불구하고 유럽 은행권의 불안과 브렉시트 등을 배경으로 계속 높아져 8월 중순에는 1달러에 100엔을 깨기도 했다. 이제 아베노믹스가 엔고의 역습에 직면했다는 우려까지 나타나고 있다. 일본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엔화가 강세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쉬운 답은 엔화가 안전자산이어서 세계경제가 불안해지면 전세계의 자금이 일본으로 몰려 엔화 가치가 높아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 경제는 20년 넘게 장기불황에 빠져 있고 정부부채 비율이 국내총생산(GDP)의 250%에 달한다. 경제가 이렇게 엉망인데 엔화는 왜 안전자산일까. 먼저 일본 경제는 수십년 동안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하여 외환준비금이 세계 2위이며, 일본인들의 순대외자산은 작년 말 339조엔으로 세계 1위이다. 경제에 충격이 있으면 일본인들이 해외의 자산을 팔아 국내로 들여올 것이라 기대되므로 엔화가 도피처가 되는 것이다. 또한 엔화가 안전자산이 되는 근본적인 배경은 물가상승률이 낮기 때문이다. 물가가 높아지면 돈의 구매력이 낮아져 통화가치가 떨어지기 마련인데, 일본은 오랫동안 디플레이션이 지속되고 있다. 일본의 7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년 전에 비해 0.4% 하락했는데 미국은 같은 기간 0.8% 상승했다. 그렇다면 하마다 교수가 기대하는 저금리의 효과는 어디로 갔을까? 현재 일본의 10년 국채금리는 -0.03%로 극히 낮은데, 금리가 낮으면 해외 자금이 덜 유입되어 보통 통화가치가 낮아진다. 실제로 세계경제가 안정적일 때는 투자자들이 금리가 낮은 엔화를 빌려 금리가 높은 다른 국가에 투자하는 엔캐리 트레이드가 급증하여 엔화의 약세를 더욱 부추겼다. 그러나 최근과 같이 세계경제가 혼란할 때는 정반대가 된다. 캐리 트레이드를 청산하기 위해 자금이 다시 일본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엔화가 강세를 보이게 되는 것이다. 한편 엔화 강세는 양적완화와도 관련이 있다. 일본은행이 시장에서 국채를 계속 사주고 있으니, 외국의 투기자본이 나중에 더 비싸게 일본 국채를 팔 수 있다고 기대하여 일본으로 몰려드는 것이다. 게다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금융시장에서 안전자산의 부족이 심화된 현실은 일본과 같은 선진국 국채에 대한 수요를 더욱 부추긴다. 결국 엔화의 가치는 일본 경제의 실력과는 따로 놀고 있는데, 이렇게 세계경제의 불안으로 인한 엔고는 안전통화의 저주라고 불린다. 사정이 이러니, 일본 경제는 세계경제가 불안하면 그 충격뿐 아니라 엔고에 의해서도 타격을 받아 ‘엎친 데 덮친 격’이 된다며 엔화의 급등을 막는 조처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그러나 일본 경제는 내수가 훨씬 커서 수출이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8%에 불과하며 해외생산 확대 등으로 환율이 수출에 미치는 영향도 제한적이다. 무엇보다 엔저로 기업의 이윤이 늘어났어도 임금은 늘어나지 않아서 아베노믹스의 선순환이 나타나지 않았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일본 경제에 필요한 것은 역시 환율효과에 기댄 경기회복이 아니라 임금 인상이나 재정지출 확대와 같은 국내적 노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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