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테러 15주년을 하루 앞둔 10일, 테러 당시 응급 구조에 앞장섰던 미국 뉴욕의 소방서 앞에 테러로 희생된 15명의 소방관을 추모하는 꽃과 촛불이 놓여있다. 뉴욕/EPA 연합뉴스
2001년 9·11 동시다발 테러가 일어난 지 15년이 흘렀다.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본토의 상징적 심장부들이 외부 적대세력의 공격을 받은 이 테러는 세계의 군사·안보 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은 베트남전 이후 최장기이자 최대 사상자를 낸 전쟁으로 지금도 진행 중이다. 최근 미국 공영방송 <엔피아르>(NPR)는 “9·11이 미국을 가장 크게 바꿔 놓은 것은 (평범한 미국인에게는) ‘평화’가 일상이었던 나라가 지금은 ‘항구적인 전쟁’ 상태에 갇힌 나라로 보인다는 것,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나라는 현재 전쟁 중이라는 게 잘 느껴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9·11이 남긴 내상은 깊고도 길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등 미국의 직접적 보복 공격을 받은 나라들에선 지금까지 미국 동맹군의 공습과 내전, 무장단체들의 테러로 목숨을 잃은 민간인 희생자만 최소 2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계된다. 이들 나라의 사망자 유가족과 부상자들이 겪고 있을 고통은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는다.
반면 미국의 전사자와 민간인 희생자 통계와 생존자들의 트라우마는 정확하게 집계되고 관찰된다. 9·11 테러의 직접 사망자만 2996명이었다. 그뿐 아니다.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지난 7월 집계를 보면, 테러 현장에서 응급 구조와 복구 작업을 했거나 테러 순간을 목격한 충격으로 70여종의 암이나 심장질환, 정신질환, 공황 발작 등 후유장애를 앓고 있는 미국인이 40만명에 이른다. 뚜렷한 이유 없이 심박수가 위험수치로 치솟고 악몽에 가위눌린다. 미군 예비역 대령인 앤드루 베이서비치 보스턴대 교수(국제관계학)는 올해 출간한 <확대 중동권에서의 미국의 전쟁>에서 “마약과의 전쟁이나 빈곤과의 전쟁처럼, 확대중동권 전쟁이 미국인의 삶에 영속적인 고착물이 됐다”고 지적했다. 테러와 전쟁의 또 다른 악마적 속성이다.
조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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