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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2030 잠금해제] 한상균의 8년 / 박정훈

등록 2016-09-18 17:28수정 2016-09-18 19:24

박정훈
알바노조위원장

명절의 감옥은 지옥이다. 면회와 편지도 안 되고 운동시간도 없다. 독방이라면 말벗도 없다. 긴 연휴 뒤의 편지와 신문이 반가운 이유다. 이 글은 민주노총 위원장 한상균이 반갑게 받았으면 하는 편지다.

그는 쌍용자동차노조 위원장으로 3년을 감옥에서 살았고, 출소 후 민주노총 위원장으로 5년의 형을 받았다. 그가 없었다면 한국의 국민은 정리해고를 당하더라도, 노동법이 자신들에게 불리하게 바뀌어도 가만히 있는 존재, 지배자들이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을 해도 괜찮은 만만한 존재로 기억됐을지도 모른다. 한상균의 8년은 우리의 자존심이다.

곤란한 일만 있으면 국민을 버리고 해외로 나가는 대통령과는 달리, 그는 자신을 위원장으로 선출해준 사람들 곁에 있었다. 백남기 농민을 살인 진압한 강신명 전 경찰청장이 책임을 회피할 때, 그는 사람을 살리기 위한 집회를 주최하였고 위원장의 책임을 다했다. 1년 6개월의 형을 받은 홍준표가 노상강도를 당했다며 죽은 자에게 한풀이를 할 때, 징역 5년을 선고받은 그는 ‘동지들이 무죄라면 무죄’라며 산 자들을 위로했다. 확실히 대통령보다 괜찮은 리더다. 그런 그도 흔들렸다.

텔레비전과 신문지면에서 수많은 이야기를 보고 있을 그의 심정이 어땠을까? 지진 때문에 기차가 연착된 줄 모르고 일하다 죽은 비정규직, 에어컨 실외기를 고치다 추락한 삼성의 수리기사 이야기, 추석을 거리에서 보낸 티브로드, 유성기업, 김포공항, 갑을오토텍, 콜트콜텍 노동자들과 세월호 유가족을 보며 밥알이 목구멍에 걸리고, 깔고 자는 모포가 죄스러웠을 것이다. 위원장으로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절박감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어지럽게 사퇴의 글자를 새겼을 것이다.

많은 사람이 그렇게 물러난다. 스마트폰 속 작은 화면에서 벌어지는 비참한 삶과 죽음이 나의 일이라면, 어떻게 견딜 수 있겠는가. 비극은 관객석에서만 즐길 수 있을 뿐, 현실이 된다면 그야말로 ‘헬’이다. 그래도 꼭 누군가 한 명쯤은 비극의 무대 위로 올라가며, 그걸 응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존재 자체로 우리는 ‘위로’받는다. 최소한 한 명은 내 편이며 나를 위해 싸운다. 감옥에 있는 한상균이 우리 옆에 있다고 느끼는 이유, 그가 위원장으로 계속 존재해야 하는 이유다.

알바노조는 해커스어학원이 알바노동자에게 퇴직금을 주기 싫어 11개월 계약만 하라는 지침과 213명의 블랙리스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밝혔다. 알바는 퇴직금과 최저임금, 주휴수당을 받는 것이 투쟁이다. 민주노총이 노동시장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알바노동자가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기존 노동운동을 흔들어 버릴 때까지 최소한 지금의 노동조건이 후퇴하지 않도록 싸워주길 바란다. 노동시장 양극화의 해법은 정규직 노동자들의 양보가 아니라 알바노동자들의 투쟁에 연대해 전체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을 바꾸는 것이다. 노동시장 최하위의 노동자들이 노동시장 최상층의 노동자들과 만난다면 그게 바로 노동자의 단결이며 그때야 비로소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의 깃발을 당당히 들 수 있지 않을까.

비록 나는 알바노조의 위원장이지만, 지난해 노동법 개악을 막은, 그리고 최저임금 1만원 파업을 준비하는 민주노총의 위원장 한상균을 나의 위원장, 우리의 위원장이라 부르고 싶다. 그에게 8년의 세월을 빚졌으니, 이제 세상으로부터 8년을 돌려받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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