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 1890년대에 중국에서 제작된 세계지도 중에는 제국주의 열강을 동물로 묘사한 것이 있다. 영국은 사자, 미국은 독수리, 러시아는 곰, 프랑스는 개구리, 일본은 원숭이였다. 자기들 스스로 만든 상징 동물로 묘사된 나라가 있었던 반면, 적대적 타자에 의해 만들어진 상징 동물로 묘사된 나라도 있었다. 영국인과 미국인이라면 이 지도를 보고 흡족했을 테지만, 프랑스인과 일본인이라면 분노했을 것이다. 세계 각국, 각 민족을 특정 동물에 비유하는 관행이 완전히 소멸하지는 않았으나, 현대인들에게는 동물보다는 건조물이 훨씬 더 익숙하다. 빅벤, 자유의 여신상, 크렘린궁, 에펠탑, 에도성 등의 건조물은 각 나라의 역사와 문화, 각 국민의 가치관과 미적 감각을 대표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현대인들은 어떤 나라에 가 보거나 그 나라 사람을 만나보기 전에, 먼저 건조물 사진을 통해 그 나라를 인지한다. 건조물 사진 한 장에 한 나라를 통째로 담는 마술이 가능해진 것은 주로 사진엽서 덕분이었다. 그림엽서는 1871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처음 발행됐다. 사진술이 발달함에 따라 그림은 곧 사진으로 대체되었고, 1894년 영국 정부는 민간 발행 사진엽서에 정부 발행 엽서와 같은 자격을 부여했다. 1900년 1월1일 대한제국 정부도 엽서를 발행했다. 관립 불어학교 교사 알레베크가 찍은 궁궐 사진 등을 프랑스에 의뢰해 사진엽서로 제작한 것은 이 직후였다. 뒤이어 서울에 들어온 일본인 사진가들도 사제 사진엽서를 만들어 팔았다. 일제강점기 한국산 사진엽서를 대표하는 모델은 남대문이었다. 일제가 조선의 표상으로 흔히 사용한 인물은 노인과 여성이었는데, 늘 열린 상태인 함락된 도시의 낡은 정문 역시 동일한 이미지 정치의 일환이라는 혐의를 벗기 어렵다. 하늘을 향해 치솟은 마천루와 타워가 차례로 한국산 사진엽서의 새 주인공 자리를 차지한 것은 1960년대 후반 이후였다. 이제 사진엽서의 시대도 저물었지만, 이 물건이 현대인의 자기인식과 세계인식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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