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경초교 교사,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장 요즘 교육계의 화두는 진로 적성이다. 많은 정치가와 교육학자들이 학생들에게 문제집만 풀지 말고, 자신이 어떤 곳에 재능이 있는지 스스로 탐색하면서 진로를 설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극히 타당한 말같이 들린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진로탐색과 설계라는 것도 결국은 이 사회가 승인하는 좋은 일자리, 그리고 그 좋은 일자리를 좀더 유리하게 확보하기 위한 경쟁이라는 측면에서 입시경쟁으로 수렴된다. 자본주의에서 교육은 시민의식의 함양이라는 중요한 의미도 있지만, 이러한 의미는 사라지고 상품을 길러내는 것이 되었다. 사육이 송아지를 위한 것이 아니듯, 교육도 아이들을 위한 게 아니다. 학교에서 학생들이 배우는 교육은 건강한 인격을 형성하는 것 대신 좋은 육질의 상품을 길러내는 것이 되었다. 그리고 상품이 된다는 것은 철저하게 자신을 상실해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물복지의 최종담론이 건강하게 키운 소를 먹어야 인간에게도 좋다는 논리를 뛰어넘을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따라서 근본적으로 비싼 값에 팔리기 위한 상품이 된다는 측면에서 사육되는 소나 돼지의 운명과 다르지 않다. 그런데도 교사, 학부모들은 학생들에게 말한다. 꿈을 가지라고. 하지만 이들이 말하는 꿈이란 곁을 돌보지 않는 이기적 욕망이다. 그런 꿈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일으키는 화근이다. <어용사전>의 저자 박남일의 이야기처럼 넓은 강에서 평화롭게 자라는 잉어는 꿈꿀 필요가 없다. 세상이 평화롭고 평등하다면 사람 또한 애써 꿈꿀 필요가 없다. 역설적으로 꿈꿀 필요가 없는 세상에서만 학생들은 꿈꿀 수 있다. 그래서 지금 학생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꿈보다 평화로운 휴식과 숙면이다. 학생들이 교육을 통해 꿈꾸고 저마다의 소질을 개발하는 주체가 되어 능동적이고 자율적으로 생각하고, 실제적 삶의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면서, 타인과 동등한 삶 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자유롭게 항해할 수 있는 능력을 함양하며 자신의 진로를 탐색하고 설계하는 교육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한 인간이 사회에서 태어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하고 행동할 수 있는 기회의 집합이 누구에게나 접근 가능한가’에 대해 먼저 검토해야 한다. 좋은 교육은 좋은 사회에서 가능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한 사회 속에서 누구나 평균수명을 누리며 살 수 있어야 하며, 적합한 주거공간을 보유하며 신체의 건강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성적인 자기결정권이 폭넓게 보장되어야 하며, 감각과 상상력, 정치적 자유, 표현의 자유, 종교 활동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또한 사랑, 정당한 분노와 같은 감정의 발달이 공포와 불안으로 방해받아서는 안 된다. 만약 감정의 발달이 공포와 불안으로 방해받는다면 건강한 인간적 유대관계를 만들 수 없고 서로 배우며 협력하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없다. 따라서 사회가 개방적이고, 통합되어 있으며, 다양성이 보장되고 협력할 수 있을 때 교육이 가능해지고 진로를 탐색하며 꿈꿀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지금 한국 사회는 어떤가? 이러한 기본적인 조건들이 붕괴되고 있고, 삶에 대한 공포와 불안은 보험과 교육의 가장 효율적인 마케팅 수단이 되고 있다. 이러한 사회에서 교육은 자기를 찾고 타자와의 공감과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경쟁, 스스로를 상품으로 사육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진정한 교육을 위해서는 무엇을 성취하는 것보다 여유를 갖고 놀 줄 알며 현재의 삶에서 여가를 즐길 수 있어야 하며, 삶에 영향을 미치는 정치적 선택 과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꿈을 꾸는 것이 아니라 꿈에서 깨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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