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조한혜정 칼럼] 다음 침공은 어디?

등록 2016-09-27 17:48수정 2016-09-27 18:58

조한혜정
문화인류학자·연세대 명예교수

카드 돌려막기로 연명하는 개인, 연구 개발 대신 구조조정에 나서는 기업, 지키지도 못할 공약만 남발하는 정치인 등 ‘내일을 팔아 오늘을 사는’ 충동 인류의 나라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 돈을 향한 질주, 경제적 개인주의자들, 그리고 충동 인류의 지독한 근시를 어떻게 할 방법은 없을까? ‘비노동 소득’으로 위기의 중산층을 구하자는 피터 반스의 책을 자주 만지작거리게 되는 요즘이다.

연휴에 마이클 무어 감독의 신작 <다음 침공은 어디?>를 보았다. 영화는 미국 국방부 장성들이 침통하게 앉아 있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한국전쟁에서부터 베트남전쟁, 이라크전쟁 등 계속 지기만 하는 전쟁을 치르면서 진이 다 빠진 장성들이 마이클 무어에게 에스오에스(SOS)를 쳐서 도움을 청한다는 설정이다. 그들의 제안을 심사숙고한 무어는 펜타곤의 전사가 되어 잘사는 나라의 일급비밀들을 뺏어오기 위해 성조기를 들고 침공에 나선다. 그가 맨 처음 간 곳은 1년에 8주 유급 휴가와 13번째 월급을 주는 이탈리아다. 그는 그곳에서 사람은 노동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노동한다는 비밀을 알아낸다. 이어서 학교 급식이 3성 호텔 수준인 프랑스를 방문해서 느긋하게 즐거운 급식시간이 행복한 학교생활의 비결이라는 사실을 간파한다. 숙제가 없기 때문에 아이들이 탁월한 인재로 자랄 수 있는 핀란드, 청년을 빚쟁이로 만들지 않는 대학 무상교육의 슬로베니아, 아들을 죽인 범인이라도 사형에 처하는 것은 원치 않는 아버지와 죄수들을 사회에 성공적으로 복귀시키는 훌륭한 간수들이 사는 노르웨이, 마약을 해도 처벌하지 않는 대신 치유를 원할 때 적극 지원하는 포르투갈, 2008년 뉴욕발 금융위기에 연루되었던 금융관련자들을 모두 감옥에 보낸 아이슬란드, 조상들이 저지른 악행을 기억하게 함으로써 사람답게 사는 것을 가르치는 독일에서 그는 여전히 합리적이고 정의롭고 윤리적인 삶이 가능한 나라를 본다. 그런데 자신이 뺏어오고 싶은 것들의 대부분이 미국에서 시작되었거나 한때 있었던 것임을 알고 침통해한다. 그간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신대륙으로 이주한 미합중국 선조들이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고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권리를 신으로부터 부여받았으며 그중에는 생명과 자유와 행복 추구의 권리가 있다”는 독립선언문을 작성한 것은 1776년이었다. 그들은 일찍이 봉건적 상속법을 폐기하였고 보편공공교육을 시행했으며 시민토론을 통해 진실을 밝혀내는 배심원제를 채택했다. 그 나라가 최근 급격하게 붕괴하고 있다. 저술가 폴 로버츠는 미국은 극단적 ‘근시사회’라고 부르면서 트레이더들과 경영자들이 거품 붕괴 앞에서 자주 썼던 “IBG, YBG I’ll Be Gone, You’ll Be Gone 너도나도 이제 끝장”이라는 말로 현 미국의 상황을 표현했다. 카드 돌려막기로 연명하는 개인, 연구 개발 대신 구조조정에 나서는 기업, 지키지도 못할 공약만 남발하는 정치인 등 ‘내일을 팔아 오늘을 사는’ 충동 인류의 나라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북유럽은 그나마 부단히 길을 찾아갔는데 미국은 어쩌다가 이렇게 패망의 길을 가게 된 것일까?

세계 대공황과 세계 1, 2차 대전(실은 유럽 대전)을 치른 유럽은 초토화된 상태에서 성찰의 시간을 갖는다. 성찰에 성찰을 거듭하며 자본주의를 개선할 길을 모색하였다. 그런데 전후 호황을 누리던 미국은 또 다른 실험국가인 소련과 냉전 놀이에 들어갔다. 원폭과 로켓 제조 등 기술 군비 경쟁에 엄청난 돈을 들이고 우주 정복의 꿈을 꾸었다. 한나 아렌트는 “인류는 지구에 영원히 속박된 채 머물지는 않을 것이다”라는 당시 러시아 과학자의 묘비 글을 인용하면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 신의 거부로 시작한 근대는 하늘 아래 모든 피조물의 어머니 신, 지구를 거부함으로 그 막을 내리게 되는 것인가?”라고 탄식했다. 국민보다 돈과 권력을 선택한 두 나라! 설익은 혁명으로 세워진 소비에트 공화국은 70년을 버티지 못하고 와해되었지만 미국은 멈추지 않고 달렸다. 석유 전쟁이 이어지고 수학 천재들이 만든 금융 게임은 세계 금융대란을 일으켰으며 세계 이곳저곳을 전쟁터로 만들고 있다.

어제 미국 대통령 결선 티브이 토론회가 있었다. “‘비장한’ 힐러리-트럼프 ‘지상 최대 정치쇼’ 출전 채비 마쳐”라는 문구는 군사주의 문화가 주도하는 미국의 단면을 그대로 표현해주고 있다. 사회가 엄청나게 부러졌음을 간파한 국민들에 의해 ‘돈보다 사람’을 선택하자는 샌더스 돌풍이 잠시 일었지만 결국은 게임즈맨십에 빠진 정치인들과 킹메이커들이 연출해내는 금권정치의 장으로 되돌아왔다. 돈을 향한 질주, 경제적 개인주의자들, 그리고 충동 인류의 지독한 근시를 어떻게 할 방법은 없을까? ‘비노동 소득’으로 위기의 중산층을 구하자는 피터 반스의 책을 자주 만지작거리게 되는 요즘이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