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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전우용의 현대를 만든 물건들] 전자오락기

등록 2016-09-28 18:38수정 2016-09-28 20:14

전우용
역사학자

우리말 동사 ‘놀다’는 독특하다. 스스로 놀면 즐거우나 남이 놀리면 기분 나쁘다. 게다가 이 동사의 명사형은 ‘놀다’와 ‘노름’ 두 개가 있다. 국어사전의 정의조차 ‘놀이나 재미있는 일을 하며 즐겁게 지내다’로서 동어반복이다. ‘놀다’란 도대체 어떤 행위를 지칭하는 단어였을까?

삼한시대 마한 사람들은 해마다 5월 파종을 마치면 귀신에게 제사 지내면서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술 마시기를 밤낮으로 쉬지 않았다. 일본 건국신화에서 동굴에 들어가 바위로 입구를 막아버린 태양신 아마테라스 오미카미를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 뭇 신들이 한 일은 여신으로 하여금 동굴 입구에서 춤추게 하고 그 모습을 보며 웃고 떠드는 것이었다.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 주민들은 올림포스 산의 제우스신을 기쁘게 하기 위해 몇 년에 한 번씩 진짜 전쟁을 쉬고 전쟁놀이를 했다.

현대에는 예술, 스포츠, 도박, 오락 등으로 분화했지만, ‘놀다’라는 단어는 본래 신을 불러내고 신에게 감사하며 신을 기쁘게 하기 위한 행위 일반을 의미했을 것이다. 나는 ‘신나게’라는 말은 ‘신이 궁금해서 나와 보도록 시끄럽게’라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요즘도 어린아이들 장난감에서 어른들 놀이도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사용되는 악기, 무기, 인형, 주사위, 카드 등은 모두 신과 교류하기 위한 도구였다. 옛사람들은 이런 도구들을 가지고 놀다가 도달하는 환락 상태를 ‘신의 은총’으로 여겼을 것이다.

1970년대 말부터, 모니터와 조작 스틱을 장착한 작은 상자들이 학교 주변 문방구점 앞에 놓이기 시작했다. 1979년부터는 국산 전자오락기도 생산되었고, 이런 기계들을 모아 놓은 전자오락실도 생겼다. 스페이스 인베이더, 갤러그 등 이 기계에 들어앉은 귀신들은 먼저 어린이와 청소년의 혼과 결합했고, 그들과 함께 성장했다. 그들은 이윽고 각 가정의 안방과 거실을 차지했고, 이제는 개개인의 주머니 안에까지 자리 잡았다. 늘 기계와 놀며 은총을 받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기계 취급 하는 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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