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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2030 잠금해제] 집단자살 / 홍승희

등록 2016-10-02 20:40수정 2016-10-02 20:44

홍승희
예술가

인류는 어떻게 멸망하게 될까. 첫째, 7년 후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하거나 둘째, 강력한 악성코드로 인터넷 연결망이 작동을 멈추는 것. 셋째, 핵전쟁, 원자력발전소의 폭발. 넷째, 이슬람 종교분쟁으로 세계 3차대전 발발 후 세계정부 수립, 이에 반발한 인류 대다수의 전멸. 다섯째, 조류독감, 구제역보다 강력한 변종 바이러스 출현. 여섯째, 외계인의 침입. 일곱째, 신의 출현.

멸망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거창해 보이지만, 이미 인류는 서서히 죽어가고 있지 않는가.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방사능이 동쪽 바다로 흘러가면서 지구를 덮고 있다. 인류는 집단자살을 하고 있고 자연은 순응함으로써 인류 멸망을 돕는다. 방사능이 한반도까지 덮칠 즈음, 그제야 원자력발전소를 폐기할까. 혹은 더 큰 강도의 지진이 찾아왔을 때 손쓰려고 미동이나 할까. 그러나 이미 한참 늦었다.

“이곳은 지옥이에요.” 한국 귀국을 앞두고, 그곳이 어떤지 물어본 질문에 돌아온 답장이다. 지진이 있었고, 자연은 보란 듯이 원자력발전소를 스쳐갔다. 한반도가 불안하다. 반쪽짜리 분단국가, 사상의 자유는커녕 표현의 자유조차 허락되지 않는 곳. 살아보겠다고 나온 농민을 물대포로 죽이고, 시신 탈취를 걱정하게 만드는 괴상한 곳. 간첩 조작에,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대낮에 바닷속으로 수장되고, 진실을 밝히라는 시민에게 종북 딱지를 붙이려 혈안이 된, 그럼에도 뒤집어지지 않고 살아있는 정권. 4대강 썩은 물에서 괴물이 만들어지고 있고, 방기한 모두에게 자연이 고스란히 괴물을 돌려주고 있는 땅. 미세먼지를 마시며 출근하고, 유전자조작(GMO) 콩을 먹으면서, 잔혹하게 공장 사육된 돼지고기와 소주를 마시며 오늘을 달래는 우리의 뇌는 서서히 가동을 멈추고 있지 않는가. 일 중독 성공 중독. 성공한 유엔 사무총장이 메시아라고 기다리고 있지 않는가. 혹은 정권만 교체되면 된다고 생각하면서 허술한 내 삶을 몽땅 망각하고 있지 않는가.

나는 인도에 있다. 소똥, 개똥이 가득한 거리에 비가 내리고, 똥은 부서진 흙과 섞여 씨앗의 보금자리가 된다. 산 위로 올라오는 구름이 골목 구석구석을 돌면서 매연을 집어삼키고, 사람들이 밟아 단단해진 흙길에서 민달팽이가 더듬더듬 땅을 만진다.

한국의 지하철, 도로를 거닐었던 5개월 전의 나를 생각한다. 어떻게 그곳에서 걸어다닐 수 있었던가. 그 공해 속에서 나는 살아있었던가. 정말 우리는 살아있는가. 저항에, 반항에, 삶을 뒤집는 것에 선택의 여지가 있는가.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말라고? 아니. 비관과 낙관의 문제가 아니다. 각성과 실천의 문제다. 인간만 인류가 멸망하고 있다는 걸 매일 까먹는다. 인정해야 하는 진실 하나는 인류는 공룡보다 비겁하다는 것. “그러니까 어쩔 수 없어, 인간은 원래 그래. 현실은 그런다고 변하지 않아”라고 말하는 그 합리적인 야만 덕분에 오늘의 거짓말들이 지탱된다.

이런 땅에서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꿈을 꾸라고 한다. 꿈? 꿈이 아니라 삶을 지켜내자. 인류는 멸망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켜야 할 삶이 있다. 고작 한번뿐이 없는 인생이고, 하나밖에 없는 지구니까. 합리적인 폭력의 세계에서 아주 비합리적인 저항을 지금 당장 시작하는 일. 오늘 당장 살아있기 위해.

부디 무사하세요. 우리 살아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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