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디터 며칠 뒤 아들이 징병검사를 받는다. 내가 징병검사를 받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아들이 군대 갈 나이가 됐다니 기분이 묘하다. 그래서인지 요즘 논란 중인 모병제에 부쩍 관심이 간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나는 원하는 사람만 군에 입대하는 모병제 전환에 반대한다. 나는 노태우 대통령 시절 육군 병장으로 제대했다. 징병제의 문제점은 군 생활 내내 질리도록 보고 듣고 겪었다. 그럼에도 모병제를 반대하는 이유는 한반도 평화 때문이다. 요즘 남북은 당장 전쟁이라도 벌일 듯 험악한 ‘말 폭탄’을 주고받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일 국군의 날 기념사에서 북한 주민들을 향해 ‘한국행’을 공개적으로 촉구했다. 박 대통령이 북한 붕괴를 기정사실화했으니 북한과의 대화와 협상은 쓸데없는 일이 됐다. 정부는 경제제재와 군사적 압박으로 북한을 무릎꿇게 만들겠다고 벼르고 있다. 나는 일촉즉발의 분단 현실에서 징병제가 한반도 평화의 안전판 구실을 한다고 생각한다. 징병제인 지금은 장관과 청와대 수석 등 고위관료, 국회의원, 대법관, 재벌 등의 아들도 ‘남들처럼’ 군대를 가야 한다. 이들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면 비정규직 노동자 아들, 순댓국밥집 아들 등과 똑같이 위험해진다. 1994년 여름 한반도 핵위기 때 미국 국방부는 한반도에서 다시 전쟁이 터질 경우 90일 내 국군 사상자를 49만명으로 예측한 바 있다. 현재 국군 병력이 63만명이니, 전쟁이 나면 국군 장병 대부분이 죽거나 다친다는 이야기다. 만약 모병제라면 돈 많고 힘센 집안 아들은 아예 입대하지 않을 테고, 외교안보정책 결정권자들이 대북 강경책을 펴는 부담이 지금보다 훨씬 덜할 것이다. 남북 사이에 무력충돌이 벌어져도 적어도 내 손자, 아들, 조카 등이 죽거나 다칠 걱정이 없을 테니까 말이다. 지난 5월 언론기고에서 평화학 연구자 정희진씨는 이렇게 주장했다. “기쁨과 슬픔을 자율적으로 나눌 수 없게 될 때, 정의를 실현하는 방식은 피해를 특정인의 몫으로 치부하지 않고 ‘바로 당신의 문제’라는 인식을 공유하는 것이다. 방사능에 오염된 고기, 가기 싫은 군대, 환경 오염된 미군기지…, 해결할 수 없다면 다 같이 겪어야 한다. 그래야 개선된다. 자기 집에 물난리가 날 때, 기름이 유출될 때, 자식이 군대에서 자살할 때, 세월호에 탔을 때만 권력은 움직이게 되어 있다.” 베트남전쟁 때인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초반 활발했던 미국 반전운동이 2003년 이라크전쟁 때는 잠잠했다. 나는 미국 징병제 폐지(1973년)와도 관련이 있다고 본다. “(징병제가 있던) 1956년 미국 프린스턴대학 졸업생 750명 가운데 과반수인 450명이 졸업 후 군에 입대했다. 2006년 졸업생 1108명 가운데 입대한 사람은 고작 아홉 명에 그쳤다.”(마이클 샌델 <정의란 무엇인가>) 2006년 찰스 랭걸 미국 민주당 의원은 “징병제로 미국 관료와 정치인 자식이 군대에 있었다면 정부가 빈약한 정보로 이라크를 침공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영국 작가 조지 오웰도 스페인 내전을 다룬 <카탈로니아 찬가>에서 이렇게 썼다. “전쟁의 가장 끔찍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모든 전쟁 선전물, 모든 악다구니와 거짓말과 증오가 언제나 싸우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나온다는 점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12일 여야 3당 대표를 만나 “한반도에 전쟁의 위험이 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남북이 ‘강 대 강’으로 치닫는 현실에서 평화의 버팀목은 자식을 군대 보낸 부모들의 ‘전쟁만은 안 된다’는 염원이다. 이 때문에 나는 통일이 되거나 한반도 평화구조가 정착될 때까지는 징병제를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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