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뉴스팀장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의 ‘막말 어록’이 날로 두툼해지고 있다. 최근엔 “히틀러는 300만명의 유대인을 학살했다. 지금 300만명의 마약 중독자가 있다. 그들을 학살하면 난 행복할 것이다”라고 말해, 유대인과 독일의 격분을 불러일으켰다. “유대인들께 깊이 사과한다”며 수습에 나섰지만,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더욱이 그는 한 나라의 대통령이다. ‘필리핀의 트럼프’라는 별명을 얻은 그가 내게도 ‘또라이’처럼 보였다. 그러던 지난달 필리핀 마닐라에서 현지 언론인과 만난 뒤부터는 조금 신중해졌다. 경력 20년이 넘는 필리핀 여성 언론인은 “한국에서는 부정부패 문제를 자유롭게 보도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하자, 그는 심각한 표정으로 “필리핀에선 부정부패를 파헤치는 기자들이 많이 살해당한다”고 말했다. ‘두테르테가 정말 막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사법절차도 거치지 않고 마약 용의자들을 이른바 ‘즉결처형’해 국제적인 비판을 받는 두테르테가 언론까지 무자비하게 탄압한다고 여겼다. 그 역시 두테르테에 비판적일 것으로 짐작하고 두테르테에 대해 물었다. 착각이었다. 그는 ‘두테르테빠’였다. 마약과의 전쟁을 전적으로 지지했고, 마약 용의자들이 경찰의 체포에 응하지 않고 반항해 사살된 것이라는 시각을 보였다. 필리핀에서 마약의 심각성과 폐해를 외부인은 잘 인식하지 못할 것이라고도 했다. 기자들이 살해 위협을 받을 정도니 두테르테와 같은 ‘처벌자’가 필요하다는 주장이었다. 두테르테의 막말은 눈앞에 보이는 청중한테 편하게 얘기하는 과정에서 나왔다고 두둔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개××”라고 한 것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의 말을 듣자니, 필리핀에서 마약과 범죄는 두테르테식 해법이 아니고서는 치유 불가능하다는 인상을 받을 정도였다. 인권 침해는 심각한 문제가 아니냐는 지적에, 그는 두테르테에게 시간을 더 줘야 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두테르테의 지지율이 91%라는 점을 강조했다. 싱가포르에 있는 동남아시아연구소(ISEAS)의 맬컴 쿡 선임연구원은 “두테르테는 두 측면에서 최초의 필리핀 대통령이다. 남부 민다나오 섬 출신이고, 또 시장 출신이라는 점에서 그렇다”고 했다. 필리핀은 수도 마닐라가 있는 루손 섬의 소수 명문 가문이 강고한 지배층을 이룬다. 필리핀에서 두테르테는 이전과는 매우 다른 지도자라는 것이다. 그는 두테르테의 인기 비결로 “선거운동 때 마약과의 전쟁, 반군과의 협상, 연방주의, 세제개혁 등을 하겠다고 했다. 당선된 뒤 실제로 약속을 이행하기 시작했다. 국민들에게 ‘자기가 한 약속을 지키는구나’ 하는 신뢰를 줬다. 또 하나는 두테르테는 보통사람의 언어로 얘기를 해 서민들과 대화가 가능하다. 아키노 전 대통령 등은 다른 언어로 얘기하는 소수 특권층으로 여겨졌다. 두테르테는 다르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외부의 비판이 오히려 국내에서의 두테르테의 인기를 보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두테르테는 지난 7월 상설중재재판소의 남중국해 판결 뒤 오히려 미국을 멀리하고 중국에 접근하고 있다. 필리핀에 중국의 더 많은 인프라 투자 등을 끌어오기 위해서다. 미국과는 연합군사훈련도 그만두겠다고 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영악하다. 보통사람이 아니다. 화려한 막말에 현혹됐다간 두테르테와 필리핀의 변화를 제대로 살피지 못할 듯하다. roseb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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