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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강내희 칼럼] 노벨상과 한국의 기초학문

등록 2016-10-09 17:26수정 2016-10-09 19:16

강내희
지식순환협동조합 대안대학 학장

이번에 생리의학상을 받은 오스미 요시노리 교수의 수상 소감은 한국 대학과 기초학문의 상황을 더욱 자조적으로 되돌아보게 만든다. “하고 싶은 연구 하고 술 마시고 즐기다 보니 상을 주더라”는 것이 언론이 전하는 그의 말이다. 그가 술을 즐겼던 것은 남이 안 하는 연구, 다시 말해 경쟁에 얽매이지 않는 효소 연구를 했던 것과 관련이 있었던 모양이다.

해마다 이맘때면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되고, 언론에서는 으레 왜 한국에서는 수상자를 내지 못하는가 하는 한탄의 소리가 나온다. 우리나라는 평화상을 수상한 김대중 전 대통령 말고는 노벨상 수상자를 낸 적이 없다. 반면에 이웃 일본에서는 수상자가 수십명 나왔고, 올해도 생리의학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그동안 노벨상 수상자를 낸 나라들을 보면 공통점이 하나 보인다. 대부분 제국주의 국가라는 사실이 그것이다. 특히 과학 분야에서 수상자를 낸 나라는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러시아 등 과거 또는 현재의 제국주의 국가들로 국한되어 있다. 인도나 중국이 어쩌다 수상자를 내기도 했지만 인구 규모로 보면 극히 적은 숫자다. 반면에 한국처럼 과거 식민지였거나 제3세계에 속했던 나라에서 과학 분야의 수상자를 낸 경우는 거의 없다.

학문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그런 상을 받는 것이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은 아니다. 나는 학문은 그저 좋아서, 그것 말고는 달리 재미있는 것이 없어서 하는 일이어야 한다고 본다. 갈수록 일자리 찾기 어려운 세상에 제 하고 싶은 일 해야 한다는 말이 사치일 수 있음을 모르진 않는다. 그래도 배우고 익히는 일의 즐거움은 누구나 누릴 권리여야 한다는 소신을 굽힐 생각은 없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을 다른 사람이 인정해주면 물론 좋겠지만, 그 일을 내가 좋아해야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러나 해마다 이때쯤이면 한국에서는 왜 노벨상을 타지 못하느냐며 여기저기서 안달을 내는 것을 보면, 학문하는 사람은 꼭 만인이 인정할 성과를 내야 하는 것처럼 여기는 것 같다.

노벨상을 주로 제국주의 국가 과학자들이 타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제국주의가 학문을 전략적으로 운영하고, 기초학문을 바탕으로 학문전략을 구사하기 때문이다. 이 점은 오늘날 미국이 지식생산의 핵심 기반인 대학을 운영하는 방식에서도 확인된다. 미국에서 대학 사회는 한국 기준으로 보면 별천지와 같다. 학문의 자유, 사상의 자유가 거기서처럼 한껏 보장되는 곳도 없을 것이다. 등록금이 세계 최고로 비싼 곳이지만 장학금 제도도 그만큼 좋다. 미국이 노벨상 수상자를 가장 많이 내는 이유는 그래서 대학이 학문, 특히 기초학문의 기반 역할을 제대로 해내는 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나는 미국이 세계질서를 쥐락펴락하는 헤게모니 국가임을 알고 있지만, 그런 힘이 단지 실용 기술이나 군사적 우위에서만 나오진 않음을 인식할 필요도 있다고 본다. 헤게모니 행사는 정당화 논리를 필요로 하며 근본적이고 비판적인 사고와 연구를 필요로 한다. 미국에서 대학이 학문의 자유를 구가하며 하는 것이 바로 그런 일이다.

제국주의를 옹호하면 안 되겠지만 식민지의 한계에 갇히는 것도 곤란하다. 한국의 대학과 학문은 아직도 독립을 이루지 못했다. 무엇보다 기초학문이 그렇다. 차세대 연구자 양성을 제대로 하지도 못한다. 대학들이 교수 채용을 할 때 ‘자사제품 불매운동’이라도 벌이는 듯 자국 대학 출신을 배척해 학생들의 대학원 진학이 줄어들어 생긴 일이기도 하다. 그나마 학자로서 일자리를 구하고 나면 곧바로 성과를 내라고 다그친다. 연구 지원을 할 때도 ‘집중과 선택’ 논리를 적용하니 오랜 세월 느긋하게 해도 성과가 나올까 말까 한 기초학문은 설 자리가 없다.

이번에 생리의학상을 받은 오스미 요시노리 교수의 수상 소감은 한국 대학과 기초학문의 이런 상황을 더욱 자조적으로 되돌아보게 만든다. “하고 싶은 연구 하고 술 마시고 즐기다 보니 상을 주더라”는 것이 언론이 전하는 그의 말이다. 그가 술을 즐겼던 것은 남이 안 하는 연구, 다시 말해 경쟁에 얽매이지 않는 효소 연구를 했던 것과 관련이 있었던 모양이다. 효소로 빚은 술을 즐기며 평생 하고 싶은 연구를 한 오스미 교수는 내가 볼 때 심포지엄의 삶을 살아온 셈이다. 그리스어에서 ‘심포지엄’은 ‘술잔치’를 의미한다. 소크라테스가 술자리에 초대되어 친구들과 사랑의 의미를 놓고 토론하는 것이 플라톤이 쓴 <심포지엄> 내용이다.

노벨상 받는 한국 학자들이 나오면 좋겠지만 그게 사실 중요한 것은 아니다. 하고 싶은 공부와 연구를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기초학문을 하는 경우가 특히 그럴 것이다. 한국에도 하고 싶은 학문을 느긋하게 할 수 있는 대학이 많이 생기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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