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팀 기자 129명이 숨졌다. 대구의 한 복지시설에서 생활해온 장애인과 노숙인들이다. 세상이 온통 떠들썩해야 할 텐데 의외로 조용하다. 복지시설을 관리할 책임을 진 대구시는 무덤덤한 반응이다. 잘잘못을 꼼꼼히 따져봐야 할 지방의회는 말이 없다. 언론도 큰 관심이 없어 보인다. 시민단체만 몇몇이 모여 진실을 밝혀달라고 외칠 뿐이다. 메아리만 허공에 흩어진다. 찻잔 속의 태풍이다. 대구시가 거리마다 넘쳐나는 노숙인과 부랑자들을 한군데 모아 수용하면서 ‘대구시립희망원’이라고 이름 붙였다. 전쟁 뒤 복구작업이 한창이던 1958년의 일이다. 20년 동안 공무원들이 직접 운영을 해오다 1980년 대구 천주교회 유지재단에 관리를 맡겼다. 천주교 교구청 안에서 재산관리와 복지시설을 도맡은 별도 법인을 유지재단이라고 부른다. 이곳에 대구시가 한 해 동안 예산 100억원씩을 준다. 이 돈으로 유지재단은 직원 150명의 인건비를 대고 노숙인과 정신장애인 등 1150명의 생활비에도 사용한다. 종교단체는 믿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30여년을 안심하고 관리를 맡겼지만, 최근 2년 8개월 새 129명이 숨지는 충격적인 사건이 터졌다. 화들짝 놀란 대구시가 “장기간 노숙생활을 해온 탓에 심신이 지친 사람들이며 병이 깊은 사람들이다. 대부분 병원에서 치료받던 중 숨졌다. 구타 같은 인권탄압은 절대 없었다”고 해명하며 서둘러 발을 뺐다. 하지만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의심은 눈덩이처럼 커진다. 정상적인 죽음이 아닐 수도 있다는 증거가 여러 군데서 쏟아진다. 지적장애를 가진 40살 된 남성은 1년 전에 숨졌다. 휴일 오전에 빵을 먹다가 갑자기 체해서 숨을 거뒀다. 비슷한 시기에 정신장애가 있는 53살 여성도 식사 도중 체해서 목숨이 끊어졌다. 사인은 질식사로만 돼 있다. 60대 초반 여성 서아무개씨는 폐렴으로 운명했다. 사망자 중에는 폐렴에 걸려 숨진 사람이 꽤 많다. 노숙생활을 오래 한 탓에 아무리 병이 깊어졌다고 해도 밥을 먹다가 갑자기 숨졌다는 말은 선뜻 수긍하기 어렵다. 폐렴도 미리 손을 썼다면 귀중한 목숨을 살릴 수 있지 않았겠냐는 아쉬움이 남는다. 시립희망원에는 의사 선생님이 여러분 계신다. 대구 현지에서는 조용하지만 국가인권위원회와 국회의원들의 움직임은 활발하다. 며칠 만에 온갖 비리가 터져 나온다. 노숙인들한테 시급 1천원도 안 되는 돈을 주고 일을 시키고 오히려 노숙인들의 돈을 뜯어내기도 했다는 말은 도저히 믿기질 않는다. 대구시 간부 직원들이 시립희망원에 압력을 넣어 친인척을 직원으로 채용시킨 사실도 들통났다. 시립희망원 직원들이 사지도 않은 마른오징어와 배추 등 반찬거리를 샀다고 거짓말을 해놓고 3억원이 넘는 돈을 빼돌렸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되풀이되는 공무원 인사청탁, 횡령 같은 판박이 비리 유형을 본다. 한마디로 총체적인 비리다. 가만히 앉아서 눈치만 보던 대구시가 느닷없이 뛰어들었다. “모든 의혹을 하나도 남김없이 낱낱이 밝혀내겠다”며 감사실 전체 직원 20여명을 시립희망원에 투입했다. 의욕은 좋지만 모든 비리가 대구시와 직간접으로 얽혀 있지 않은가? ‘같은 식구’끼리 감사가 제대로 될지 모를 일이다. 감사 결과를 내놔도 과연 몇 명이나 믿어줄지도 의문이다. 시립희망원 감사를 대구시에 맡겨둬서는 절대 안 된다. 단 한명이라도 억울한 영혼이 생겨서는 안 된다. 이번만큼은 반드시 보건복지부가 나서야 한다. sunny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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