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홍세화칼럼] 야당은 야성(野性)을 강화해야

등록 2016-10-20 17:59수정 2018-05-11 16:17

오늘 한국 정치에는 두 개의 여당이 있다고 말해야 할지 모른다. 하나는 청와대와 정부를 장악한 새누리당이라는 여당이고, 다른 하나는 대부분 국회의원이 목적이어서 이미 목적을 이룬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라는 ‘국회의 여당’이 그것이다. 자주 챙기겠다고 말하곤 하는 그들의 민생 어디쯤에 지금 감옥에 갇혀 있는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있을까?
홍세화
장발장은행장, ‘소박한 자유인’ 발기인

“이런 야만적 불법행위와 권력 남용을 자행하는 현 정부와 대통령은 탄핵 대상이 아닌가요? 이런 정도의 사건이 서구에서 일어났다면 어떤 대통령도, 어떤 내각도 사임할 일이 아닙니까?”

박원순 서울시장이 최근 페이스북을 통해 대통령 탄핵을 요구했다. 그는 박근혜 정권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을 문제 삼았다. 헌법에 국민소환제가 없는 상황에서 박 시장의 요구는 국회를 향한다. 우리는 2004년 3월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의결된 뒤 헌법재판소가 이를 기각할 때까지 2개월 동안 노무현 대통령이 그 직을 수행할 수 없었던, 대한민국 헌정사상 초유의 일을 기억하고 있다. 당시 노 대통령이 탄핵 소추된 것은 총선을 앞두고 “열린우리당이 표를 얻을 수만 있다면 합법적인 모든 것을 다 하고 싶다” “국민들이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줄 것을 기대한다”라고 발언하여 선거중립을 위반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측근 비리, 경제 파탄의 책임을 덧붙였지만 그것은 형식적인 곁다리였다. 그에 비하면, 박근혜 대통령은 블랙리스트 작성만으로도 탄핵 소추의 사유가 되고도 남을 것이다. 그 위에 세월호 참사 때 7시간 공백과 총체적 대응 실패, 개성공단 폐쇄, 국가정보원의 간첩조작과 해킹 사건, 국가폭력에 의한 백남기 농민 살해, 10억엔으로 “최종적, 불가역적으로 해결했다”는 일본군 위안부 12·28 합의, 사드 배치 결정, 최근의 최순실 사태에 이르기까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소추를 따져야 할 이유는 차고도 넘친다.

돌이켜보면 2012년 대통령 선거 당시 국정원의 선거공작 사건을 그냥 넘길 일이 아니었다. 국가기관이 불법적인 선거공작을 노골적으로 저질렀는데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선거 결과를 승인해주는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다. 그 잘못은 박 정권에 무소불위의 날개를 달아준 격이 되었고 오늘 탄핵을 요구할 지경에 이르게 한 시발점이었다. 박 시장의 탄핵 요구에 대해 새누리당은 대변인 김성원의 입을 통해 “서울시장의 위치와 직분을 넘고 넘어도 한참 넘는 ‘막장 정치테러’다”라고 비난했다. 반면에, 비주류의 자기검열 때문일까, 아니면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찬성표를 던졌던 추미애 당시 새천년민주당 의원이 대표 자리에 있어서일까, 그도 아니면 차기 대선 후보 간 당내 경쟁의 복잡성 때문일까, 박 시장이 속한 더불어민주당조차 가시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다만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헌법과 민주주의 질서를 훼손하고 부정하는 박근혜 대통령, 그리고 국민은 보지 않고 대통령 심기 보위에만 혈안인 새누리당의 후안무치한 막장 정치를 연일 접해야 하는 민심은 이미 탄핵 그 이상”이라고 반격에 나섰을 뿐이다.

기득권 집단은 광신자 집단 버금가게 열성적이다. 누리고 있는 기득권을 유지하거나 더 크게 하려고 할 때 뻔뻔스러움과 억지를 부린다면, 기득권을 조금이라도 빼앗길 우려가 있을 때엔 거기에 악착스러움까지 보태는 경향이 있다. 국회의원 다수를 빼앗긴 4월 총선 이후 6개월이 지난 오늘까지 더 치열하게 싸우는 쪽은 새누리당이다. 미르 재단, 케이(K)스포츠 재단 사건으로 수세에 몰린 그들이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를 빌미로 반격에 나서는 모습을 보라. 이른바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문재인 대북 결재요청사건 TF’를 꾸리더니 곧 위원회로 격상시켰다. 최근 <한겨레21>이 합리적 보수의 인물로 꼽아 표지 사진에 실은 유승민 의원은 “문재인 전 대표에게는 인권에 대한 상식을 찾아볼 수 없다”고 말해 그의 합리적 보수가 무엇인지 잘 모르게 했다. 특히 국회부의장 심재철은 “해방 뒤 반민특위가 있었듯, 통일 뒤 인권법정이 열리면 문 전 대표를 법정에 세워야 한다”고 뒤집힌 역사 인식을 거침없이 드러냈다. 우리는 정치 담론에서 참조해 마땅한 가치인 진실을 외면하게 된 오늘의 상황과 관련하여 쏟아지는 정보를 파편화하여 기존에 형성된 당파성 안에 갇히게 만드는 사회관계망의 성장을 주목해야 한다. 한 분석가는 “인터넷과 사회적 관계망에서 사용되는 알고리즘은 모든 시민들을 모순되는 정보와 부딪히지 않은 채 똑같은 방식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지적, 미디어적 환경에 가두는 인식 틀을 형성한다”고 지적했다. 이 점을 감안할 때 30% 콘크리트 지지율조차 무너졌다는 것은 박근혜 정권의 국정 농단과 난맥상이 어느 정도에 이르렀는지 가늠케 한다.

최근에 <르몽드>는 “트럼프, 위험한 인물”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트럼프가 거짓말을 밥 먹듯 하여 거짓이라는 개념 자체를 무력화시켰다”고 썼는데 그와 비슷한 인물들이 새누리당에 적지 않다. 가령 “국회의원이 단식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고 했던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자신의 말을 뒤집어 주군을 향한 충정으로 단식을 결행했다. 그렇다면, 백남기 농민을 살해한 국가폭력이 그 비통한 주검에 다시 칼을 대겠다는 야만만큼은 막겠다고 나서는 야당 정치 지도자가 나와야 하는 게 아닐까. 오늘까지 세월호 특별법 개정을 이루지 못한 것에 이를 전방위적으로 막은 새누리당보다 야당을 질책해야 하는 것은 정치도의는커녕 인간의 도리마저 사라져가는 이 참담한 세상에 대한 처연함을 그래도 나눌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야당에 야성을 좀 더 발휘해 달라고 요구하면 지나친 주문이 될까?

실상 노동자 민중의 비판적 시각에서 볼 때, 오늘 한국 정치에는 두 개의 여당이 있다고 말해야 할지 모른다. 하나는 청와대와 정부를 장악한 새누리당이라는 여당이고, 다른 하나는 대부분 국회의원이 목적이어서 이미 목적을 이룬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라는 ‘국회의 여당’이 그것이다. 한국에서 국회의원이라는 특권적 지위를 누리는 이들에게 결여될 수 있는 절박함을 대신 채워줄 이념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자주 챙기겠다고 말하곤 하는 그들의 민생 어디쯤에 지금 감옥에 갇혀 있는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있을까? 또 성과연봉제와 저성과자 퇴출에 맞서 파업을 벌이는 공공부문 노동자들에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무엇의 이름으로 있을까? 1년 넘게 강남역 8번 출구에서 ‘이어 말하기 농성’을 벌이고 있는 반올림(삼성전자 직업병문제 해결을 위한)에게는? 미르 재단, 케이스포츠 재단에 800억원을 모아준 재벌 기업이 그 반대급부로 얻을 수 있는 수십 수백 배의 대가가-그렇지 않다면 그들이 왜 돈을 갖다 바치겠는가- 노동자들의 몫일 수 있다는 인식을 하고 있을까?

그렇다. 진보정당, 이념정당이 취약하다. 자세히 읽지 않은 탓인지 모르겠으나 <한겨레>에서도 최근 녹색당에서 여성청년 김주온씨와 농민 최혁봉씨가 공동운영위원장으로 선출된 일이나 노동당에서 이갑용 전 울산동구청장이 당대표로, 탈핵운동을 해온 이경자씨와 행동하는 의사회에서 활동한 임석영씨가 부대표로 선출된 소식조차 볼 수 없을 만큼 소수 이념정당은 철저히 무시된다. 그러니 지금으로선 힘 있는 야당에 호소할밖에. 야성을 강화해 달라고. “공격이 최선의 방어 무기”라는 것을 새누리당의 독점물로 놔두지 말라고. 두려울 게 무엇인가. 국민 다수가 지지하고 있는데! 박정희 정권이나 전두환 정권 때와 달리 고문당할 일도 없지 않은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