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 유적. 지금은 기둥만 남아 있지만, 기원전 6~8세기에는 신탁을 듣기 위해 찾아오는 세계 각지의 사람들로 번성했다고 한다. 위키미디어 갈무리
고대 그리스인들은 거의 모든 일에 대해 신에게 묻는 ‘신탁’에 의존했다. 그리스 땅의 배꼽에 자리 잡은 델포이 신전의 신탁이 특히 유명했다. 예언의 신 아폴론이 관장하는 이곳은 이방인에게도 열려 있어 각지에서 사람이 모여들었고 그만큼 정보도 풍부했다. 신탁을 의뢰한 이들은 얼마간의 요금과 희생양을 바치고,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신성한 샘물로 자신을 정화하는 의식을 치렀다. 그러면 신전 무녀 ‘피티아’가 일반인들이 접근할 수 없는 신전 속 장소인 ‘아디톤’에서 신 내림을 받고, 온몸을 떨며 신탁을 전했다. 아디톤 바닥의 갈라진 틈으로 들이마시는 ‘프네우마’라는 연기가 피티아의 신 내림을 도왔다고 한다.
인간 중심의 합리주의로 유명한 그리스인들이 이처럼 신탁에 의존하는 모습은 어색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너 자신을 알라”, “무엇이든 지나치지 말라” 등 델포이 신전에 붙은 경구에서 알 수 있듯, 그리스인들에게 신탁은 절대적 존재의 일방적인 명령과 지시가 아니라 인간의 한계를 지적해주고 스스로 돌아보게 만드는 경고였다. 피티아가 전해주는 말은 늘 모호하고 다중적이라 여러 가지 풀이를 낳았고, 이는 사람들 사이의 토론과 협상으로 이어졌다. 민주주의를 발전시킨 아테네인들은 아예 신탁에 대한 풀이를 민회의 토론 대상으로 삼고, 그 결과를 정책 결정에 반영했을 정도다.
대통령이 은밀하게 저 혼자만의 신탁을 받아온 사실이 드러났다. 공주, 혼, 구중궁궐, 문고리 권력, 십상시, 무녀, 제사장, 혼군 등 이 정부 들어 온갖 봉건시대의 말들이 자주 입길에 올랐던 이유도 이제야 알 것만 같다. 문명이란 껍데기를 썼지만 속은 주술로 가득 찬 오늘날의 한국 사회보다, 신 내린 피티아가 전해준 델포이 신탁을 두고 모두가 갑론을박했던 고대의 그리스 사회가 차라리 더 부럽다.
최원형 여론미디어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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