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 “조물주의 유일한 실수는 인간을 창조한 것”이라는 우습지 않은 우스개가 있다. 인류는 문명을 창조한 이래 조물주가 만든 다른 피조물들을 자기 생활공간 주변에서 쫓아내고 망가뜨리는 데에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인간은 자기 정착지 안과 그 인근의 생명체들에게 죽거나 쫓겨나거나 길들여지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를 주지 않았다. 인간의 필요에 따라 가축, 곡식, 채소, 화훼, 과수 등으로 이름 붙여진 생명체들만이 인간의 공간에서, 인간을 위해 살다가 인간을 위해 죽을 수 있었다. 사람에게 공존 허락을 받은 생명체라도 인구가 조밀한 곳에는 살 자리를 얻기 어려웠다. 도시의 시장에는 죽은 동물과 뿌리 뽑힌 식물이 넘쳐흘렀으나, 산 것들에게 배정된 공간은 아주 협소했다. 개, 고양이, 말 등의 동물은 물론 나무조차도 사람 집 담장 안에서 사람과 함께 살았다. 특히 과실을 맺지 못하는 나무는 부잣집 마당에나 뿌리내릴 수 있었다. 고대 로마인들은 행군하는 병사들에게 그늘을 제공하기 위해 로마와 변방을 잇는 큰길 좌우에 소나무를 심었는데 이것이 길가의 나무, 즉 가로수의 기원이다. 그러나 가로수가 보편화한 것은 각 도시들의 도로가 차도와 보도로 분리된 뒤였다. 우리나라에 가로수가 처음 등장한 것은 1897년 명성황후 국장 직전이다. 혜화동 사람 홍태윤이 사비를 들여 동대문 밖에서 홍릉에 이르는 연도에 수백 그루의 백양나무를 심었는데, 그는 이 공로로 홍릉감독 벼슬을 얻었다. 이 가로수는 홍릉 위병들이 극진히 관리한 덕에 무척 잘 자라 1930년께에는 동대문에서 청량리에 이르는 도로가 전국 최고의 가로수길로 명성을 날렸다. 오늘날 도시의 도로변은 가로수들로 이루어진 선형(線形)의 숲이 되었다. 인공 구조물들에 둘러싸여 자연과 차단된 채 일상을 영위하는 현대의 도시민들은 가로수에서 겨우 계절의 변화를 느낀다. 가로수는 도시민들을 자연과 연결해주는 가냘픈 매개물이자, 다른 생명체들에 대한 인간의 죄책감을 덜어주는 물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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