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강내희 칼럼] 문제는 민주주의다

등록 2016-11-06 17:23수정 2016-11-06 22:21

강내희
지식순환협동조합 대안대학 학장

박근혜 게이트가 일어난 원인도 민주주의 문제에서 찾아야 한다. 대통령이라고 권력을 독점하고 사유화하게 만든 정치질서, 다시 말해 사이비 민주주의가 판을 쳐서 그런 사달이 났다. 박근혜 게이트가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려면 진정한 실질적 민주주의를 세울 필요가 있다. 박근혜 게이트를 보고 분노한 사람들이 새로운 정치체제, 사회체제를 만들 꿈을 다시 꾸기 시작했다.

한 사인의 국정농단으로 불거진 최순실 게이트를 호가호위 사건으로 인식하는 사람이 많다. ‘호가호위’란 전한시대 유향이 지은 ≪전국책≫의 <초책>에 나오는 고사성어로, 여우가 호랑이 행세를 한다는 뜻이다. 청와대 비선실세로 대통령 권세를 빌려 온갖 이권을 챙기며 국정에 개입했으니, 최순실씨는 호가호위한 것이 분명하다. 다만 이때 잊어선 안 될 점이 있다면, 여우가 호랑이처럼 굴기 위해서는 뒤에 버티고 선 호랑이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초책>에 등장하는 초나라 재상 소해휼의 국정 전횡은 초선왕이 용인해서 일어난 일로 전해진다.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역시 박근혜 대통령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최순실 게이트를 박근혜 게이트로 규정해야 하는 이유다.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국민이 그 주권자다. 개인 박근혜가 국정을 맡게 된 이유는 오직 하나,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국민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사인인 최순실씨를 국정에 개입시켜 헌법 질서를 무너뜨렸는데도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기보다는 사적인 인간관계 문제로 얼버무리려 한다. 물론 그런 태도가 쉽게 통할 리는 없다. 지금 대통령에 대한 퇴진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국정을 농단한 박근혜와 최순실, 그리고 함께 연루된 사람들은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 민심인 것이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이번 사태의 원인을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문제는 민주주의다. 요즘 ‘민주주의’ 하면 식상해하는 사람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1987년 개헌으로 민주화 제도가 정착된 뒤로 민주주의를 참칭한 좋지 않은 일이 자주 생겨 나온 반응으로 보인다. 한국 사회는 87년 체제에서 자본의 권리만 신장시키는 신자유주의 프로젝트가 가동되었고, 특히 1997년 아이엠에프 사태 이후 사회적 불평등이 악화되었다. 민주화의 이름으로 각종 개혁이 진행되었지만 최순실 일가가 속한 금수저만 특권을 누렸지, 대다수 민중에게 돌아온 것은 피폐해진 삶뿐이었다. 지금 거리에서 청년학생, 노인, 주부, 노동자, 농민이 대통령 하야와 탄핵을 외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래도 문제는 민주주의다. 박근혜 게이트가 일어난 원인도 민주주의 문제에서 찾아야 한다. 대통령이라고 권력을 독점하고 사유화하게 만든 정치질서, 다시 말해 사이비 민주주의가 판을 쳐서 그런 사달이 났다. 박근혜 게이트가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려면 진정한 실질적 민주주의를 세울 필요가 있다.

세상이 바뀔 때는 일이 한꺼번에 벌어지는 법이다. 박근혜 게이트가 현행 헌법을 바꾸자는 논의가 확산될 시점에 불거졌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위로부터 정치권의 개헌 논의가 시작되자 초유의 게이트 사건이 터졌고, 온갖 비리가 폭로되면서 대중의 분노가 하늘을 찌른다. 87년 체제의 종식을 고하는 징후들이 한꺼번에 나타나는 양상 아니겠는가. 단, 이런 상황에서도 문제는 민주주의다.

지금 한국은 위로부터의 개헌 시도와 아래로부터의 개헌 요구가 대결하는 국면으로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어느 길로 가느냐가 관건이다. 위로부터의 개헌 시도는 보수적일 공산이 크다. 최근의 정치권 중심 개헌 논의도 그렇다고 봐야 한다. 아래로부터의 운동이 부재한 가운데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그것은 문제가 적지 않은 현행 헌법의 내용마저 후퇴시킬 우려가 큰 것이다.

박근혜 게이트의 여파로 다행히 이런 흐름을 바꿔낼 동력이 사회적으로 생겨났다. 최순실 일가의 행각으로 우리 사회 특권계급이 어떤 삶을 살고 있고, 정치체제가 그것을 어떻게 비호하는지 훤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은 국가 최고 권력자의 국정농단이 현행 정치체제의 문제임을 증명해준다. 이 체제가 유지되는 한 박근혜 게이트는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문제는 국정 자체인 것이지 국정중단 사태가 아니다. 지금 국정중단을 빚을 하야, 탄핵을 외치는 소리가 커지는 것을 보면 그 사실을 깨달은 사람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게이트를 정치적으로 봉합하려는 노력은 중단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거리에 나선 사람들이 제대로 된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를 포기할 것 같지는 않다. 박근혜 게이트를 보고 분노한 사람들이 새로운 정치체제, 사회체제를 만들 꿈을 다시 꾸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