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대 교수·시민자유대학 이사장 역사의 얼룩, 박정희의 그림자와 작별할 때가 왔다. 권위를 상실한 권력자, 정당성 없는 정권이 아직 나라를 운행하겠다고 버틴다. 죽음의 검은 바다를 향해 돌진하던 세월호 때마냥 그 어떤 도덕적 책임 의식도 없는 선장과 선원들이 나라 전체를 침몰의 위기로 몰아가고 있다. 주권자인 국민에게 박근혜씨는 더 이상 대통령이 아니다. 국민은 이미 탄핵 절차를 끝냈다. 헌법이 보장한 권한조차 스스로 내팽개친 그가 법의 틀 안에서 자발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다. 조건 없이 퇴진하거나 아니면 식물 대통령으로서 가식의 눈물로 연명치료를 받는 것이다. 그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이제 선택은 광장에 선 시민의 몫이다. 시민은 박근혜표 나라를 만드느라 넋이 나갔던 새누리당이 사라진다고 달라질 것이 없다는 것은 잘 안다. 광장에서 이미 얼빠진 대통령과 쓰레기 수준의 정당을 만들어낸 사람과 제도, 체계의 뿌리를 찾아서 제거하는 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금 갖가지 매체를 통해 유포되고 있는 심리 분석으로는 악의 뿌리에 접근하기 어렵다. 대통령의 심리적 외상과 발달 및 결정 장애, 혹은 빙의나 주술에 관한 무분별한 추측은 예능 수준의 가십거리일 뿐이다. 더구나 그녀의 사생활에 대한 추정은 쑥대밭이 된 나라의 문제를 사적 지평으로 축소할 위험이 크다. 언니와 동생, 교주와 신도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는 분석 놀이는 대부분 사태 왜곡이다. 정치공학도 바른길이 아니다. “형광등 100개를 켜놓은 듯한 아우라”를 가졌다고 박근혜를 띄우고 챙겨온 (TV)조선(일보)이 왜 그를 버렸는지 알 바 아니다. 친박정당이 주도하는 대선에선 보수가 필패한다는 저들의 계산은 얕은 수작에 불과하다. 보수대연합을 위한 저들의 작당을 예견하고 대응하는 수를 짜는 데 열정을 소비해선 안 되는 까닭이다. 이런 정치공학적 셈법으로 취할 수 있는 최선은 기껏해야 제3지대에서 휘발될 낡은 진보연합이다. 저들과 우리를 적과 동지로 분할하는 정치공학적 진영논리는 결국 정치 혐오를 부추긴다. 정치 혐오는 혐오스런 정치를 키울 뿐이다. 부패하고 무능해도, 저질이라도, 심지어 악마라도 무조건 내 편을 선택하는 정치의 양극화가 지금의 사태를 불러온 악의 큰 뿌리다. 그렇다고 오락과 조롱을 오가며 정치를 예능으로 만들어선 안 된다. 예능화된 정치는 악마들이 즐기는 물타기 전략이다. 정치공학과 예능, 그리고 사생활과 심리 분석에서 벗어나야 환란을 부추긴 악마의 실체를 볼 수 있다. ①사익에 물들어 비선 실세의 농간에 맞춰 춤을 춘 관료들과 그들을 용인한 행정 권력 체계, ②온갖 수법으로 탈법을 저지르다 보니 언제든 권력자가 요구하는 출연금을 내야 하는 재벌과 전경련 체계, 그리고 ③행정과 자본 권력의 야합을 감시하기보다 거꾸로 거간꾼 행사를 해온 부패한 검찰과 언론, 그리고 교육 체계 구석구석에 사악한 무리들이 숨어 있다. 이들을 찾아 몰아낼 때까지 시민들의 광장행진은 이어질 것이다. 해방 이후 어쩌면 처음으로 국민대통합의 가능성이 열리고 있다. 유신을 정점으로 쌓여온 쓰레기 더미에서 공감, 공생, 공유, 공공의 가치를 담은 새로운 제도와 헌법을 만들어갈 시민 혁명의 꽃이 피어나고 있다.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한 일부 정치인들이 시체애호증(necrophilia) 환자처럼 이미 죽은 사람을 더 죽이는 데 흥분하고 있다. 하지만 시민의 바람은 자극이 아니라 희망의 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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