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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 사회] 의리와 배신 / 김성경

등록 2016-11-09 18:25수정 2016-11-09 20:04

김성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의리는 미덕이다. 사전을 찾아보니 ‘사람의 관계에서 지켜야 하는 바른 도리’라는 뜻으로, 한자어 또한 의로울 의(義)에 다스릴 이(理)로 쓴다. 의로움으로 상대방을 대한다는 것은 그만큼 정의롭고, 윤리적이며, 선해야 함을 의미한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의리’는 엉뚱한 맥락에서 전혀 다른 기의를 가리킨다. ‘우리가 남이가’, ‘남자라면 의리’ 등의 문화적 코드가 말해주듯이 가부장적 남성들의 문화 표지이면서, 부당한 공모 관계를 통해 누군가를 불공정하게 배제하는 기제로 작동되는 것이다. 권력과 이권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네트워크라는 세련된 이름으로 공공연하게 작동하는 혈맥, 학맥, 인맥 등이 바로 대표적인 ‘의리’의 결사체이다. 공적 무대 뒤켠에서 작동되는 ‘의리’는 합리적 시스템을 무력화하면서, 비이성적인 과정을 거쳐 납득하기 어려운 결과를 초래한다.

한국 사회에서 ‘의리’는 공공의 선이나 윤리적 지향의 틀 안에서 작동하기보다는 사적 욕망 추구를 바탕으로 한다. 이는 극소수만의 공모 관계의 근간이 되고, 결국 다수의 박탈감과 자괴감의 원인이 된다. 게다가 ‘의리’의 카르텔은 서로의 일탈과 부정을 그들만의 비밀로 공유함으로써 유지되는 경향이 강하다. 서로 약점을 물고 물리면서 유지되는 것이 기실 ‘의리’의 실체인 것이다. 의로움은커녕 온통 사사로움으로 가득 찬 ‘의리’는 이 때문에 필연적으로 ‘배신’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흥미로운 것은 표면적으로는 비이성적이고 맹목적이기까지 한 ‘의리’가 적어도 그 당사자들 관계성 내에서는 철저한 합리적 계산을 바탕으로 한다는 사실이다. 몇몇이 독점한 권력과 이권을 적당히 추종자들에게 나누어주고, 수혜자들은 권력자에 대한 보답으로 혹은 관계 지속의 약속으로 ‘의리’를 지킨다. 마르셀 모스가 <증여론>에서 주장한 것처럼 모든 관계는 결국 ‘선물’의 교환임이 다시금 확인되는 지점이다. 모스는 호혜성이라는 관계는 둘 중 어느 하나라도 교환의 약속을 어기거나, 내가 준 ‘선물’과 상대방의 ‘답례’가 등가를 이루지 못할 때 지속될 수 없다고 설명한 바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가장 어려운 시기’에 자기 곁을 지켰다는 이유에서 국민에게 위임받은 국정 책임자로서의 권한을 최순실에게 넘겼다. ‘의리’의 대가는 엄청난 규모의 부당한 이득과 무소불위의 권력이었다. 이러한 관계는 비단 박근혜-최순실에서 머무르지 않는다. 정권 내내 철저하게 권력의 하수인이었던 언론은 권력과 이권을 나눠 갖고, 침묵이라는 ‘의리’로 답했다. 이 정권에서 부역했던 수많은 정치인, 공무원, 지식인, 기업인 또한 마찬가지다. 그들의 지난 몇년간의 ‘의리’를 상기해봤을 때 무엇을 ‘선물’로 받았을지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이제 더 이상 ‘선물’을 기대할 수 없는 대부분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답례하기를 멈춘다. 그중 몇몇은 갑자기 ‘정의’를 들먹거리고, 공공의 가치를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역사가 증명해주듯이 이들 대부분은 권력이라는 ‘선물’ 앞에서 언제라도 다시금 ‘의리’의 화신으로 변신할 수 있다. 어쩌면 박근혜-최순실의 부패와 국정농단은 작금의 상황의 일부분일지도 모른다. 의로움이 없는 거대한 ‘의리’ 결사체가 사실 현 상황의 본질이다. 이는 우리가 지금 단순히 몇몇의 법적 처벌 혹은 정치권력 교체에서 멈출 것이 아니라 썩을 대로 썩어버린 이 사회의 근간까지 윤리적이고 정의로운 의리(義理)의 철퇴로 심판해야만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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