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에디터 팔자에 없이 정치콩트를 써본 적이 있다. ‘끝물’이라는 제목이었다. 2003년 새해 기획으로 이듬해 치러질 총선을 소재로 박용현 현 정치에디터와 함께 썼다. “거역할 수 없는 큰물이 밀려와 썩은 오리알, 냄새 나는 쓰레기, 잡동사니들과 함께 자신도 휩쓸려 떠내려가는 꿈”이란 마지막 대목은 아직도 생각난다. 실제 2004년 탄핵 사태에 이어 사상 최초로 의회 권력이 교체돼 가상으로 그린 그림이 얼추 들어맞아 체면치레는 했다. 2016년 11월 다시 큰물을 본다. 12일 민중총궐기와 3차 국민행동의 날, 남대문부터 광화문에 이르는 대로를 가득 메운 시민의 행렬을 보면, 어쩌면 큰물이라는 표현도 모자랄지 모른다. 경찰과 시위대가 전면적으로 맞붙는 식의 격렬한 충돌은 없었다. 집회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킨 뒤 잠든 어린아이들을 챙기는 부부, 공식 집회가 끝난 뒤 “이런 큰길에서 언제 춤을 춰보겠냐”며 관객들의 손을 당기는 춤꾼들, 100만명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를 묵묵히 청소하는 젊은 벗들을 보면서 난 민심의 쓰나미를 봤다. 모든 것을 다 쓸어버릴 듯한 기세로 밀려드는 거스를 수 없는 물살. 동행한 고등학생 딸래미는 “나중에 내 아이들한테 ‘그 역사적인 현장에 엄마도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역사는 2016년 11월을 어떻게 기록할까. 1960년 4·19혁명을 닮았다고 할까. 아니면 1987년 6월항쟁이나 2008년 광우병 시위의 재연이라고 할까. 거대한 촛불의 행진은 2008년을 닮았다. “호헌철폐, 독재타도!”와 비슷하게 “박근혜 퇴진!”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울려퍼지고 이제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시민들의 정언명령이 됐다는 점에서 1987년 6월항쟁에 비견된다. 시민들 저편에 서 있는 집단의 천박함과 촌스러움, 아직도 대통령직을 고집하는 박근혜와 그의 비선실세들이 국가권력을 사사로이 악용한 국정농단 행태에서는 책을 통해 간접경험한 4·19혁명 즈음도 떠오른다. 한국 근현대사라는 큰 틀에서 보면 중요한 변곡점마다 시민의 힘으로, 민중의 힘으로 역사의 수레바퀴를 조금씩 앞으로 전진시켜 왔다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매 시기 그 힘이 정치적 승리로 귀결된 것은 아니었다. 2008년 촛불이 민주주의의 퇴행을 멈칫거리게는 했지만 ‘이명박근혜’ 정권이 이렇게 나라를 망치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4·19혁명은 박정희의 5·16쿠데타에 꺾이고 말았다. 1979년 서울의 봄은 이듬해 5월 광주를 짓밟은 전두환의 집권으로 이어졌고, 1987년 6월항쟁의 단물은 노태우가 빨아먹었다. 그래서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사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말은 광장에 선 시민들과 야권의 말이기도 하지만 대통령 박근혜의 말일 수도 있다. 마지막 남은 지지자 5% 중에 말 잘 듣는 군 장성이나 북한에 “총 몇 발 쏴달라, 대포면 더 좋고…”라고 공작할 정보기관의 고위급 인사가 없을까. 느슨한 틈이 조금이라도 보인다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또 보수 기득권 세력은 더이상 버티기 힘들다고 판단하면 자신들의 가장 약한 고리가 돼버린 박근혜를 버리고 자신들의 체인을 다시 단단하게 이어줄 대체재를 찾으려 할 것이다. 지지층을 복원하려는 재집권 시나리오를 만지작거리고 있을 것이다. 그런 무모한 시도들이 파고들지 못하게 하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눈을 부릅뜨고 마주잡은 손을 더욱 굳세게 잡는 것,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고 되뇌면서 이 싸움을 즐기는 것, ‘박근혜 이후’를 대비하며 내가 꿈꾸는 나라를 상상하는 것, 그 상상의 최대공약수를 바탕으로 힘을 배가할 지혜를 찾는 것이다. bh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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