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 회원권 1억5천만원, 연간 이용료 2천만원짜리 피부관리 병원을 이용한 사람들에 대한 세평은 대략 셋으로 나뉜다. 첫째는 “그 정도 지위에 있는 사람이 그런 병원 이용하는 게 뭐 어때서?”이고, 둘째는 “제 돈으로 이용했으면 누가 뭐라나?”이며, 셋째는 “연봉 2천만원도 안 되는 사람이 수두룩한데 어떻게 그럴 수 있나?”이다. 이들 중 돈이나 지위에 관계없이 행위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은 세 번째뿐이다. 그런데 옛날 ‘그 정도 지위’에 있던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벽 칠이 벗겨지고 창틀이 어그러지거나 보료가 해져서 담당자가 수리하기를 청해도 윤허하지 않으셨다. 의례 때 입는 곤룡포만은 격식에 맞추었으나 나머지 옷들은 빨고 기워 입으셨다. 겨울에 아무리 추워도 모피 옷을 입으신 적이 없으므로, 모시는 신하들도 감히 모피 옷을 껴입지 못했다. 국법에는 하루에 다섯 번 음식을 바치게 되어 있으나 왕께서는 하루에 세 번만 드셨고 배불리 드신 적이 없었다.”(영조대왕 행장) 자기 권세나 재산을 과시하는 것이 ‘사’(奢)이고, 여럿이 쓸 수 있는 물건을 혼자 다 써버리는 것이 ‘치’(侈)이다. 유사 이래 인류는 ‘사치’를 죄의 일종으로 분류해왔다. 남보다 잘나 보이고 싶은 욕망이야 모든 인간이 공유하는 것이지만, 이 욕망을 공동체의 통일성과 유대감을 해치는 정도로까지 표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인류가 오랜 세월에 걸쳐 만들고 유지해온 가치관이었다. 그런데 대략 한 세대 전부터, 같은 물건에 대해 사치품이라는 단어 대신 명품이라는 단어가 쓰이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 명품은 주로 골동품 등 감상용 물건들에 붙던 이름이었다. 명품이라는 고아한 이름은, 과시를 위한 낭비의 한편에 자리 잡고 있던 죄의식을 지워버렸다. 오늘날 명품은 도덕적 금제에서 해방된 욕망의 표상이다. 하지만 이름을 바꾼다고 본질이 바뀌지는 않는다. 이 물건들의 주된 역할은, 여전히 공동체 한편에 분노와 좌절감을 쌓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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