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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재벌의 세습경영체제와 정경유착 / 박현

등록 2016-11-27 18:23수정 2016-11-27 19:04

박현
경제에디터

서울 광화문 광장에는 지금 이런 플래카드가 내걸려 있다. ‘내가 이러려고 자동차 만들었나.’ 자동차 대신에 스마트폰과 반도체, 이동통신, 백화점, 설탕 등 다른 대기업의 상품이나 서비스를 여기에 넣어도 무방할 것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는 내로라하는 재벌들이 대부분 연루돼 있기 때문이다. 최고 권력자가 공익재단이라는 미명 아래 빨대를 꽂아 사익을 챙기고 재벌들은 여기에 공모했으니 일반 노동자들이 느끼는 박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 한동안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듯했던 정경유착이라는 단어가 다시 무대 위로 등장했다. 이번 사건을 보면, 재벌과 권력 상층부 간의 은밀한 거래관계인 정경유착이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정경유착은 1960~70년대 고도성장기에 재벌 중심의 압축성장을 하는 과정에서 관행으로 자리잡았다. 권력자가 사업상의 각종 특혜를 제공하는 대가로 기업가는 뒷돈을 줬다. 정부가 특혜를 주는 수단은 중화학산업 할당, 세금 감면, 금융 지원, 노조 활동 제한 등 다양했다. 부실기업 인수 과정에서 혜택을 제공하거나 알짜배기 공기업을 넘겨줬다. 그 결과로 재벌은 급속도로 팽창했다. 재벌은 이권을 챙기고자 나서서 돈을 주거나, 최소한 불이익을 당하지 않으려고 보험성 돈을 건넸다. 그 돈의 조성 과정과 거래는 불법적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내역은 베일 속에 있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1992년 정계에 진출하면서 밝힌 내용은 빙산의 일각을 보여준다. “박정희 대통령 때는 한번에 5억원씩 내다 마지막에는 20억원씩 냈고, 전두환 대통령 때는 추석 때 20억원, 연말에 30억원을 냈다. 6공 들어서는 처음에는 5공 때와 같이 20억원 내지 30억원씩으로 올렸고 이후 50억원을 낸 뒤 마지막으로 90년 말 100억원을 냈다.”

권위주의 시대의 이런 관계는 민주화 이후 그 양태가 바뀌었다. 대통령 주위의 실세들이 뒷돈을 챙기거나, 대선 캠프에 거액의 자금이 제공됐다. 1992년 한보그룹의 대선자금 제공과 2002년 ‘차떼기’ 대선자금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런 정치자금 제공은 2004년 정치자금법이 대폭 강화되면서 상당부분 사라졌다.

10여년이 지나 발생한 이번 사건은 또 다르다. 연루된 재벌 대부분이 편법 또는 불법적인 소유·경영 세습을 하거나 재벌 2~3세들 간 경영권 분쟁에 휩싸여 있는 곳임을 알 수 있다. 구속된 총수의 사면을 위한 로비도 근원을 따져가면 경영권을 물려받는 과정과 관련돼 있다. 특히 미르·케이(K)스포츠재단 모금과 별개로, 대통령이 개별적으로 만난 총수가 속한 삼성·에스케이·롯데·씨제이 등이 이에 해당한다. 검찰 수사에서 면세점 업체 선정 문제가 개입된 것으로 확인된다면 70~80년대 정경유착의 특성이 재등장하는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세습경영체제라는 재벌의 아킬레스건이 주 매개체가 된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재벌은 청와대의 도움 또는 묵인을 필요로 했다.

그래서 이번 사건의 해법은 국민의 대통령 소환이라는 정치적 이벤트에만 국한돼서는 안 된다. 그러나 재벌개혁은 지난한 과제다. 재벌 총수 일가가 적은 지분으로 지배주주를 유지하고 세습까지 하려면 각종 편법·불법적 꼼수가 따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대판 왕’의 지위에 있는 총수 자리를 자녀들에게 물려주려는 욕구를 꺾기는 쉽지 않다. 재벌 스스로 결단을 하지 못한다면 정치·사회적인 압력이 불가피하다. 외부적으론 상속·증여세법과 공정거래법을 강화하면서 이를 더욱 엄격히 적용하고, 내부적으론 노동이사 같은 독립적 이사들을 이사회에 참여시켜 경영감시체제를 강화해야 할 것이다.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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