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부자가 서로 전혀 모르는 손님 100명을 칵테일 파티에 초대했다. 그중 두세명에게만 “테이블의 와인 가운데 라벨 없는 와인이 다른 와인보다 훨씬 귀한 최고급 와인”이라고 귀띔했다. 파티가 끝날 때쯤 그 정보는 거의 모두에게 알려졌고, 귀한 와인은 한 방울도 남지 않았다. 헝가리 수학자 팔 에르되시와 알프레드 레니가 1959년 내놓은 ‘무작위 네트워크 이론’에서 인용되는 예화다.
이치는 간단하다. 파티에선 모르는 사람끼리 섞어둬도 자연스럽게 두서너명씩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러다 다시 새로운 사람들과 어울린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서로 모두를 다 만나진 않아도 두어 다리를 건너면 간접적으로는 서로 연결되는 단일한 네트워크 무리가 형성된다. 와인 정보는 이 네트워크로 전해진다. 연결 기회가 많고 집단의 밀도가 높을수록 연결은 자연스러워진다.
더 현실적인 모델도 있다. 집단 안에도 상호 결속도가 더 높은 하위 그룹이 존재하고, 그런 하위 그룹들은 적은 선으로도 쉽게 연결된다. 예컨대 고등학교 동기들과 대학의 같은 과 동기들은 ‘나’ 한 사람으로 연결될 수 있다. 1998년 나온 ‘작은 세상 네트워크 모델’이다. 여섯명만 거치면 세상 사람이 다 연결된다는 ‘6단계 법칙’도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평균 이상으로 유독 많은 연결선을 지닌 ‘허브’가 있다는 ‘척도 없는 네트워크 모델’(1999)이 있다. 소수가 네트워크의 연결과 정보 따위를 독식하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이 모델로 설명된다.
‘친박근혜’(친박) 정치인들이 지금 와서 “최순실을 몰랐다”고 주장한다. 최씨 자신이 네트워크의 허브이겠지만, 그가 비선 실세라는 정보는 한둘에게만 알려져도 쉽게 전파되는 정보다. 허브가 될 만한 실세도, 소그룹도 여럿인 친박에서 간접적으로라도 최씨를 모르기는 매우 어려워 보인다. 그럴 확률은 아마 0에 수렴할 것이다.
여현호 논설위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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