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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 사회] 제보자들의 사회 / 서복경

등록 2016-11-30 18:38수정 2016-11-30 20:48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

새로운 정보들이 흘러넘치는 요즘이다. 그 이면에는 언론과 정당, 국회의원과 검찰에게 매일 정보를 제공해주는 제보자들이 한몫을 하고 있다. 한 자릿수 대통령 지지율과 매주 계속되는 광장 시민들의 힘이 있었기에, 이들은 생계와 안전의 위험을 감수하고 입을 열고 있다. 감사한 일이다. 그리고 슬픈 일이다. 이 정부가 5천만의 생계와 안전과 행복을 이렇게나 망쳐놓기 이전에, 무수한 제보자들이 두려워하지 않고 말을 할 수 있었던 사회였다면 어땠을까?

2007년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통령선거 경선 후보와 최순실씨 관계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던 김해호씨는,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을 받고 실형을 살았다. 당시 그가 말했던 대부분의 의혹은 최근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형법상 명예훼손죄는 우리 사회 기득권자들에 대한 정보를 차단하는 데 지대한 기여를 한다. 누군가 정치인, 기업 총수, 공무원의 비리 정보를 폭로하면 그 사람은 곧 재판정에 서야 한다. 시민이 알아야 했던 소중한 정보는 재판정 검사와 변호사, 판사들만의 정보로 갇히고, 실형이 선고되면 정보 자체가 사라져버린다.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이 명예훼손죄를 형법상 범죄로 취급하지 않는 이유는, 유권자의 알 권리가 개인의 명예훼손으로 인한 손해보다 더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대통령 일가에 관한 의혹을 제기했던 김어준·주진우씨는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로 기소되었다. 2013년 1심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했지만 검찰은 항소했고, 2015년 2심 재판부가 다시 무죄를 선고했지만 검찰은 상고했다. 허위사실공표죄는 형법상 명예훼손죄의 공직선거법 버전이다. 2심 재판부는 무죄 선고의 근거를 다음과 같이 밝힌 바 있다. ‘언론의 자유는 민주국가에서 국민이 갖는 기본권의 하나이며, 선거 국면에서 국민이 정치 정보를 갖는데 제공되는 정보는 다른 중대한 헌법적 국익을 침해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 이들은 김해호씨처럼 실형을 살지는 않았지만, 3심 재판이 끝날 때까지 그 정보는 ‘재판 중인 정보’가 되어 우리 사회 극히 일부 시민들에게만 전해졌다.

2014년 ‘세월호 7시간’의 의혹을 보도했던 <산케이신문> 가토 다쓰야 지국장도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정에 서야 했다. 아니 박근혜 대통령이 그를 법정에 세웠다. 이로써 ‘세월호 7시간’에 대한 합리적 의심과 관련 정보들은 법정에 갇혔고, ‘누구도 함부로 발설하면 안 되는 그 무엇’이 되어 버렸다. 남의 나라 언론인을 법정에 세울 수 있는 게 이 나라 법이고 검찰인데, 평범한 시민들의 입장에서 어찌 함부로 이 정보에 대해 왈가불가할 수 있었으랴.

그렇게 박근혜 대통령은 5번의 국회의원을 역임하고 대통령까지 되어 온갖 범죄를 저지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긴 시간 동안 시민들은 그에 대해 ‘알 권리, 들을 권리, 말할 권리’를 빼앗기고 살았다. 우리 사회의 무수한 제보자들이 두려움 없이 말할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다면, 우리는 언제든 대통령 박근혜, 국회의원 박근혜, 검사 박근혜, 재벌 총수 박근혜를 만나게 될 것이다. 권력에 대한 가장 중요한 견제장치는 자유로운 시민들의 ‘입’이다. 언론인, 공무원, 일반 시민들이 언제든 두려움 없이 권력의 비리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정치인들이 지금 관심을 가져야 하는 건 행정부 수반을 수상으로 바꾸는 게 아니라, 자유로운 시민 제보자들의 사회를 만드는 방법이다. 그것이 당신들을 또 다른 ‘박근혜’로 만들지 않는 길이다.

[관련 영상] 한겨레TV | 더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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