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마리 앙투아네트 / 고명섭

등록 2016-12-06 17:20수정 2016-12-06 19:08

1789년 바스티유 습격으로 시작된 프랑스대혁명은 1791년 입헌군주제 수립, 1792년 군주제 폐지를 거쳐 1793년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 처형으로 절정에 이르렀다. 그러나 혁명의 진로가 탄탄대로였던 것은 아니다. 왕실과 귀족의 반혁명 음모로 혁명은 번번이 좌초의 위기를 겪었다. 이 시기에 파리 민중 사이에 널리 퍼진 것이 정치적 포르노그래피였다. 포르노그래피는 왕실의 너저분한 사생활을 자극적으로 전하면서 그 안에 혁명적 주장을 담았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이 포르노그래피의 단골 주인공이었다. 사치와 향락에 젖은 왕비는 민중 분노의 표적이 되었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생애에 대한 역사적 논문>이라는 팸플릿은 “범죄와 방탕으로 오염된” 왕비의 삶을 묘사하는 데 필력을 쏟았다. <프랑스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의 은밀하고 방탕하고 추잡한 삶>은 채색 판화를 곁들여 왕비의 성적 방종을 세밀하게 그렸다. 팸플릿은 베스트셀러가 됐다.

1793년 10월16일 처형장으로 끌려가는 마리 앙투아네트.
1793년 10월16일 처형장으로 끌려가는 마리 앙투아네트.
흥미로운 것은 혁명의 전진이 가로막힐 때마다 정치적 포르노그래피가 폭발하듯 늘었다는 사실이다. 혁명이 목표에 이르지 못할 때 민중은 분노를 표현할 수단을 찾았고, 왕실의 사생활은 부패한 지배층에 대한 분노의 불길에 연료를 대주었다. 포르노그래피는 노래·신문·벽보를 거쳐 퍼져나갔다. 포르노그래피를 통해 민중은 왕실 사람들을 신성한 존재에서 보통 사람으로, 마지막에는 자신들보다 못한 짐승의 수준으로 끌어내렸다. 왕은 돼지가 됐고 왕비는 원숭이가 됐다. 이 나라 대통령도 같은 운명을 겪고 있다. 비아그라·유사마약·백옥주사가 등장하는 비린 이야기가 신문과 방송과 페이스북에 떠돈다. 이 단어들과 함께 온갖 포르노그래피적 상상력이 번져 나간다. 대통령이 정치적 목숨을 연장하려고 계속 구질구질한 꼼수를 쓴다면, 대중의 분노는 대통령의 인격에서 최후의 위신까지 벗겨내고 말 것이다.

고명섭 논설위원 michael@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