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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전우용의 현대를 만든 물건들] 빵

등록 2016-12-07 18:43수정 2016-12-07 20:48

전우용
역사학자

프랑스 혁명 전야, 굶주린 민중이 호화찬란한 베르사유 궁전 앞에 몰려와 “빵을 달라”고 외치자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는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 왜 저 난리들인가?”라고 했다고 한다. 다 알다시피 근거 없는 이야기다. 1946년 남한에서는 모리배의 매점매석으로 쌀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거리 곳곳에는 “쌀을 달라. 쌀을 주는 우리 정부를 속히 세우자”라고 쓴 포스터들이 나붙었다. 그러자 이승만의 부인 프란체스카는 “한국 사람들은 참 이상하다. 쌀이 없으면 빵을 먹으면 되지”라고 했다고 한다. 역시 근거 없는 이야기다.

‘빵’은 포르투갈어 ‘팡드로’(p?o de l?)를 일본인들이 흔히 하는 방식으로 축약하여 만든 단어다. 일본인들이 포르투갈인들과 무역을 개시한 것이 1540년대이니, 이 무렵에 생긴 단어로 추정된다. 17세기에는 중국에 사신으로 갔던 한국인 몇 사람이 이 음식을 맛보았다. 이기지(李器之, 1690~1722)는 <일암연기>에 이렇게 기록했다. “모양이 우리나라의 박계(薄桂)와 비슷했는데, 부드럽고 달았으며 입에 들어가자마자 녹았으니 참으로 기이한 맛이었다.”

빵은 1880년대 중반 두 경로로 한반도에 들어왔다. 하나는 개항장의 일본인들이 만든 ‘판매용’ 빵이었고, 다른 하나는 서울 정동의 서양인집 중국인 요리사들이 만든 ‘가정용’ 빵이었다. 1890년대에는 일본인 거류지였던 서울 충무로 일대와 현 남대문시장 안에 ‘화양(和洋) 과자상’(빵집)이 여러 곳 생겼다. 1894년 청일전쟁 중에 일본군은 빵을 비상식량으로 썼다. 아마 현재의 한국군도 비상식량 겸 간식으로 쓰는 ‘건빵’이었을 것이다.

오늘날의 한국인들에게 빵은 더 이상 ‘먹어도 먹은 것 같지 않은’ 별미가 아니다. 밥이든 빵이든 배불리 먹을 수 있으면 족하다. 이 겨울, 아직도 하루 한 끼로 근근이 견디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그런데도 재벌들에만 혜택을 몰아주면서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지 않는 정권이라면, 두고두고 ‘무지해서 민중을 괴롭힌 정권’이라는 비난 겸 조롱을 받아도 결코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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