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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 사회] 우리, ‘사람’임을 외치다 / 김성경

등록 2016-12-07 18:44수정 2016-12-07 20:49

김성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촛불집회가 계속된 지 어느덧 한 달이 훌쩍 넘어간다. 그동안 수많은 이들이 집회장에 모인 이유는 무엇일까. 박근혜-최순실이 국정을 농단해서? 세월호 7시간 동안 박근혜 대통령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국민의 세금이 대통령의 개인적 삶에 과도하게 쓰여서? 아니면 누군가가 부당한 지원과 특혜를 받아서?

지금은 ‘박근혜-최순실’ 등이 이 비탄에 가까운 분노의 근원인 것 같지만, 좀 더 솔직해지자. 이 모든 사태는 단순히 한두 명의 범죄자의 문제가 아니다. 작금의 현실은 역사의 퇴적물이고, 부조리한 사회 구조에 근원을 두며, 그리고 ‘우리’를 ‘사람’이 아닌 부속품으로 만들어버린 이 거대한 자본주의에서 기인한다. 다시 말해, 지금 촛불이 명령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박근혜 대통령의 법적 처벌이나 탄핵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이 부도덕한 근간을 근본적으로 뒤엎는 것이다.

사실 광장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탄핵’, ‘처벌’ 등의 구호가 힘차게 외쳐지는 군중의 대열도, ‘평화집회’라고 칭송받으며 경찰관에게 꽃을 건네는 청와대 100미터 앞도 아니며, 촛불 파도의 장관도 아니다. 내 가슴속 무언가 뜨거운 것이 꿈틀거리게 한 풍경은 경복궁의 담벼락에 붙어 앉아 김밥과 보온병에 담아 온 따뜻한 물을 마시는 가족들의 모습이었다. 아마 꽤나 먼 거리에서 왔으리라. 몇 시간 동안의 집회로 분명 배가 고파졌겠지만, 식당에서 사먹는 밥값이 약간은 신경 쓰일 정도의 평범한 소시민일 것이다. 어쩌면 콩나물시루 같은 광역버스와 전철을 갈아타면서, 자신들의 이 퍽퍽한 삶이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그 답을 얻고 싶어 온 이들일 것이다. 전쟁터와 같은 학교와 직장에서 몸도 마음도 병든 우리 이웃들일 것이다.

이제 더 이상은 고통, 슬픔, 무기력함을 삭일 수 없는 이들이 내달음쳐 닿은 곳이 바로 광장이다. 그래서 나는 광장에서 비명소리를 듣는다. 민주주의, 평화, 정의, 희망과 같은 약속이나 정치적 해법이 아닌, 나 죽겠다고, 이러다가 정말 죽을 것 같다는 울부짖음을 듣는다.

오래전부터 이 사회는 몇몇만의 것으로 존재해왔다. 국가를 사유화한 박근혜-최순실(그리고 이전 집권자들), 수십년간의 정경유착으로 몸집을 불린 재벌, 권력과 돈에 기생하는 언론, 권력의 향방에 따라 재빠르게 원칙을 바꿔내는 공직사회, 무늬만 ‘지식인’인 대학 사회, 민주주의 빼고 모든 것을 잘하는 정치권 등 그들의 게임에서 ‘우리’들은 ‘사람’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지금껏 ‘착한’ 우리들은 이 비관적인 삶이 마치 자신의 잘못인 것 같아 괴로워하며 절망해왔다.

지금 광장이 따뜻한 이유는 적어도 이 비참이 우리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서로의 존재를 통해 확인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껏 우리의 근면함과 선함을 이용해온 그들을 심판해야 한다. 단순히 정치적, 절차적 민주주의에서 머무는 것이 아닌, 우리가 ‘사람’임을 자각하지 못하게 하여, 우리를 숨죽이게 한 한국 사회의 불온한 기득권 세력을 모조리 갈아엎어야 한다. 그 시작은 우리가, 내가 ‘사람’이라고 외치는 것일 게다. 함부로 하지 말라고, 나도 분노할 줄 알며 존중받고자 하는, 당신들과 똑같은 ‘사람’이라고 소리치는 것 말이다. 아 맞다. 소리 내는 것 정도는 힘을 가진 그들이 ‘평화’로운 정치적 의사표현이라며 칭찬해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그들이 두려워할 만큼 더 크게 소리쳐야 할 것이다. 무서워서 도망칠 정도로 크게 말이다.

[관련 영상] 한겨레TV | 더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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