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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읽기] 공화국과 시민 / 김남국

등록 2016-12-18 17:34수정 2016-12-18 19:07

김남국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홉스는 신민의 자유는 주권의 무제한적 권한과 일치하기 때문에 개인이 콘스탄티노플의 군주제 아래 거주하든 아니면 루카의 자유국가에 거주하든 자유의 크기는 아무 차이가 없다고 말한 바 있다. 물론 홉스의 주장은 틀렸다. 만약 어떤 사람이 술탄의 신민이라면 그 사람은 루카의 시민보다 덜 자유롭다. 콘스탄티노플에서 자유는 순전히 술탄의 선의에 의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군주제에서 법의 근원은 군주의 의지와 동일하기 때문에 만약 술탄이 마음을 바꾼다면 신민의 자유는 어느 순간 줄어들거나 사라져 버릴 것이다. 그러므로 콘스탄티노플에서 가장 자유로운 신민이 누리는 자유가 루카의 가장 비천한 시민이 누리는 자유보다도 못한 것이다.

민주주의 시대에도 여전히 군주가 되려는 정치인이 있고 술탄을 꿈꾸는 자본이 있다. 그들이 우리의 자유를 위협하는 한 시민은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 마키아벨리는 공화국을 유지하기 위해 시민이 갖춰야 할 세 가지 덕목을 제시한다. 첫째, 뇌물이 난무하는 사회적 부패의 대가는 역사에서 언제나 노예로의 전락이었기 때문에 시민들은 결코 뇌물을 받아서는 안 된다. 둘째, 모든 시민은 자신의 정부가 야망에 찬 개인이나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는 소수집단의 손에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반드시 노력해야 한다. 셋째, 시민들은 자신의 공동체를 정복하기 위해 침략하는 외부의 적에 맞서 언제든지 싸울 단호한 의지를 갖고 있어야 한다.

공화국의 시민이 갖춰야 할 덕목이 이와 같다면 정치지도자가 갖춰야 할 최소한의 덕목은 민주적 의사결정 능력과 공인의식일 것이다. 민주적 의사결정 능력이란 대화와 토론을 통해 다수의견과 소수의견을 구별해 내고 이를 조정하여 대안을 제시하고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동시에 채택되지 않은 소수의견을 존중하고 그들의 권리를 보호할 정책을 제시할 수 있는 능력이다. 공인의식이란 정치공동체의 일을 책임 맡아 대부분의 시간을 사람들의 눈에 노출된 광장에서 보낼 때 그 긴장을 견뎌낼 능력을 가리킨다. 보통의 시민들은 주로 사적인 공간에서 개인으로 지내다가 정치공동체가 필요로 할 때 광장에 나선다. 그러나 정치지도자는 대부분의 시간을 광장에 머물면서 힘겨운 도덕적 과부하 상태를 견뎌내야 한다.

세계적으로 기존 질서에 대한 불신이 높아가는 가운데 민주주의는 도전받고 있다. 냉전 이후 대규모 시민들이 모이는 집회 자체가 많지 않고, 설령 있다고 해도 주로 인종, 문화, 종교 갈등과 관련된 유혈 투쟁이 대부분이었다. 2016년 한국의 촛불집회는 87년 체제 이후 절차적 민주주의 아래서 성장한 독립적인 개인들이 모였다는 점에서 그 숫자도 놀랍지만, 그들의 주장이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부패한 권력을 비판하고 법과 원칙이라는 민주주의의 추상적 가치들을 지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민주주의 후퇴라는 세계적인 흐름을 뒤바꾼다는 의미가 있다.

혹자는 이를 시민혁명으로 부른다. 혁명은 변화의 폭과 속도가 빠르고 근본적임을 뜻한다.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이 촛불집회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점, ‘재벌도 공범이다’라는 구호가 보여주듯 촛불집회가 우리 사회의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구조적 모순으로 눈을 돌린다는 점에서 혁명적 성격을 갖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아직은 그 결과를 예측하기 힘든 진행 중인 혁명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다만 광장의 주인이자 주권자로 나섰던 젊은 세대의 집단경험의 기억이 앞으로도 오랫동안 한국 민주주의를 견인하는 버팀목 구실을 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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