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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말글살이] 야민정음

등록 2016-12-18 17:37수정 2016-12-18 19:21

어느 국회의원이 엄숙한 국정조사장에서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점잖지 못하다는 말을 피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런 경우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긴장되고 지엄한 분위기일수록 아주 사소한 불균형이나 예상치 못했던 긴장 파괴로 웃음이 터지기 쉽다. 또한 말이란 것에는 엄숙한 용도도 있으나 우스개의 용도도 있다.

말로 하는 놀이에까지 이르지는 못했지만 종종 글자로 장난치는 놀이도 있다. 주로 인터넷에서 ‘대한민국’을 ‘머한민국’으로 쓴다든지 하면서 모양이 비슷한 글자로 규범화된 언어가 가지고 있는 엄숙함을 희화화하는 것이다. 또 그 장난이 여러 공직자들이나 유명 인사들의 이름에까지 다다른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박근혜 대통령의 이름을 ‘박ㄹ혜’라고 적는 것도 꽤 자주 눈에 뜨인다.

돌이켜보면 과거에 이명박 대통령의 이름도 ‘이띵박’, 김대중 대통령의 이름은 ‘김머중’으로 적어 놓는 짓궂은 일도 꽤 있었다. 대통령만 아니라 연예인 유재석씨도 ‘‘윾재석’으로 적어 놓으면 발음도 쉽지 않다. 야구 동호인들의 사이트에서 시작해서 ‘야민정음’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야구선수 강귀태씨도 ‘강커태’라는 야민정음으로 표기되기도 했다. 결국 야민정음은 공직자나 유명 인사들한테 대중이 농담을 걸거나 장난치는 모양새가 된 듯싶다. 일종의 ‘문자 오락’이 된 셈이다.

또 이런 장난을 보고 ‘한글 파괴’라고 노여워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 정도의 장난 가지고 무너지거나 망가질 한글이 아니다. 오히려 다양한 용도를 가지게 되면서 우리의 언어 문화의 통속적 저변을 더욱 넓혀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된다. 한글로 다양한 디자인 작품을 만드는 것도 큰 틀에서 보면 이런 자유분방한 의식에서 비롯했다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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