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12월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표준국어대사전에 사실은 ‘실제로 있었던 일이나 현재에 있는 일’로, 진실은 ‘거짓이 없는 사실’로 풀이돼 있다. 허위 사실이라는 조합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사실이 늘 진실인 것은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기상청은 해마다 늦가을이면 설악산의 첫얼음 소식을 알린다. 기상청의 ‘설악산’은 1596m 높이에 설치된 자동기상관측장비(ASW)를 의미한다. 이곳에서 측정된 당일 기온이 영상일 때가 종종 있다. 2014년엔 무려 1.8도나 됐다. 얼음은 0도 이하에서 언다는 상식을 거스른다. 하지만 몇가지 사실을 보태면 기상청 발표가 거짓이 아닐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설악산 높이는 1708m이다. 고도가 100m 높아질 때마다 온도는 평균 0.5도씩 낮아진다. 자동기상관측장비는 백엽상처럼 1.2~1.5m 높이에 있다. 맑은 날엔 복사냉각 때문에 지표는 훨씬 차갑다. 사실들을 종합하면 설악산에 얼음이 얼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에서 증인들이 진술하는 ‘사실’이 쏟아지고 있다. 허위 사실을 말하는 적극적인 거짓말부터 모르쇠로 사실을 숨기는 소극적인 거짓말이 난무한다. 기업 총수들처럼 적당히 ‘얼버무리기’(paltering)도 반복됐다. 최근 미국 하버드대 연구팀은 이 ‘제3의 거짓말 유형’이 훨씬 광범위하게 사용되며 폐해도 크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기상청의 첫얼음 정보는 사실들을 토대로 한 ‘추정’이 아니다. 설악산의 얼음은 중청봉 대피소에서 근무하는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이 물이 언 것을 눈으로 확인한 뒤에야 확정된다. “최순실 이름을 들어보지도 못했다”고 잡아떼던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영상 증거로 거짓이 들통나자 그제야 “알지 못한다”는 말이었다고 얼버무렸다. 국정농단 진상규명을 위해서는 훨씬 더 많은 증거가 필요할 것 같다.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