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집행위원 사내가 눈물을 왈칵 쏟아낸다.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한다. 악몽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한 지 13년, 그의 시급은 법정 최저임금보다 90원 많았다. 두 아이의 아빠는 올봄 노조에 가입하자마자 공장 밖으로 쫓겨났다. 23명이 정문 앞에서 노숙을 시작했다. 5월9일 새벽 1시30분. 살기 어린 눈빛의 경비들이 술 냄새를 풍기며 그들을 덮쳤다. 8명이 허리와 다리를 다쳐 병원으로 실려 갔다. 나흘 뒤에는 쥐도 새도 모르는 시간, 새벽 3시30분에 농성장을 짓밟았다. 6월15일 보안과장의 “밀어” 한마디에 경비들의 구둣발이 날아왔다. 얼굴과 목을 크게 다쳐 병원에 입원했다. 언론에 한 줄 나지 않았다. 12월14일 국회에서 열린 현대차 용역폭력 보고대회. 임승환씨는 “너무 억울하고 분했는데 이때까지 참고 참았던 게 터졌다”며 한참을 흐느꼈다. 12월6일 정몽구 ‘호위무사’들의 국회 청문회 폭력난동 장면이 <에스비에스>(SBS) 8시 주요뉴스로 보도되자, 네이버와 다음에는 8500개의 댓글이 달렸다. 현대차를 비난하며 불매운동을 하겠다는 내용 일색이었다. 울산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악명 높은 정문 경비대가 외곽으로 빠지고 수요 집회에 나온 경비도 확 줄었단다. 승환씨는 난생처음 언론이 고마웠다. 손석희 <제이티비시>(JTBC) 사장이 18회 민주시민언론상 본상을 수상했다. ‘올해의 좋은 신문, 방송 보도’는 한겨레와 제이티비시 기자들에게 돌아갔다. 두 언론의 끈질긴 보도가 진실을 밝혀 촛불항쟁의 도화선이 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론이 박근혜 배후인 재벌의 비리도 최순실만큼 집요하게 파헤치고 있을까? 금속노조에서 일하던 2006년. 삼성과 현대차 비판 광고를 싣기로 했다. <한겨레>는 일방적 주장이라는 이유로, <경향신문>은 터무니없는 가격을 불러 광고 게재를 거부했다. 소식이 알려지자 한겨레 기자들이 항의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2013년 삼성전자 수리기사 최종범씨가 “배고파서 못살았다”며 목숨을 끊었다. 어느 언론도 관심 갖지 않았다. 모든 신문사에 광고 요청 공문을 보냈지만 한 곳도 실어주지 않았다. 사주 이름 빼는 조건으로 광고를 받아주는 신문도 한겨레, 경향 정도다. 어느 작가는 백혈병 문제를 거론하며 삼성을 아우슈비츠에 비유했다가 칼럼에 칼질을 당하고 연재가 중단됐다. ‘정몽구의 죄’라는 제목의 칼럼은 언론사 안에서 한바탕 소동을 빚기도 했다. 삼성이 언론사 월급 전날 광고비를 입금한다는 소문도 떠돈다. 삼성과 현대차 광고가 없어도 월급이 밀리지 않는 언론사가 있기는 할까? 지난 주말 4대 재벌 비정규 노동자들이 청와대를 향해 행진했다. 시민들과 함께 재벌을 뇌물죄로 구속하라고 외쳤다. 8주간 822만명, 촛불은 더 깊고 넓어지는데 여의도 정치의 관심은 오로지 권력뿐이다. 여론조사 1위 문재인이 대통령 되면 달라질까? 그는 “권력이 시장에 넘어갔다”며 재벌 앞에 무릎 꿇은 노무현과 다른가? 특검이 이재용 최태원 신동빈을 출국 금지하고 총수들을 소환하겠단다. 재벌이 괴물이 되어버린 나라, 일터에서 골목상권까지 못 살겠다는 아우성이 들끓는다. 30년 전 전두환에게 거액을 상납한 재벌을 단죄해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었다면 달라지지 않았을까? 재벌 대수술 절호의 기회, 언론의 임무가 막중하다. 임기 끝자락 정치권력 앞에서만 용감한 언론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재벌의 ‘꼬붕’이기를 거부하고, 임기 없는 경제권력에 맞서 싸우는 언론노동자들의 분투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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