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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전우용의 현대를 만든 물건들] 이태리타올

등록 2016-12-21 18:27수정 2016-12-21 19:21

전우용
역사학자

“병사들은 봄 여름 가을에는 비 올 때, 그리고 장마철에는 자연히 목욕과 세탁을 한다. 개울이나 웅덩이에 군복을 입은 채로 들어가 휘젓다 나와서 짜면 되며, 겨울에는 목욕과 세탁을 아예 할 수 없다.” 6·25전쟁 당시 국군의 위생 상태에 대한 국방부의 보고서 내용 중 일부다. 당시 빗물로 샤워하는 병사들에게 비누 외에 다른 목욕용품이 지급되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한반도 최초의 대중목욕탕은 1880년께 부산의 일본인 거류지에서 문을 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1890년대 말에는 한국인이 경영하는 목욕탕도 생겼다. 기록상 서울 최초의 한국인 경영 대중목욕탕은 이시직이라는 사람이 1898년 여름 광통교 남쪽 청계천변에 개장한 수월루(水月樓)다. 한식과 양식, 술, 각종 과일 등을 팔았고 ‘조용한 처소’도 제공했으니 요즘의 찜질방과 비슷했다. 이후 이와 비슷한 요리점 겸 목욕탕이 하나둘 생겨났고, 일제강점기에는 요리점 규모를 대폭 줄인 일본식 탕옥(湯屋) 문화가 일반화했다. 대중목욕탕이 늘어남에 따라 가세가 변변한 집 식구들은 한 달에 한두 번씩 뜨거운 물이 담긴 욕조에 한참 동안 몸을 담그고 나와서 수건으로 때를 미는 행위에 익숙해졌다.

1968년 6월, 목욕용 세척포대와 목욕용 접찰장갑이 각각 실용신안 특허를 획득했다. 부산 사람 김필곤이 이탈리아산 ‘비스코스 레이온’을 꼬아 마찰력이 강한 목욕용 수건을 개발한 것이다. 이 수건은 ‘이태리타올’이라는 이름의 상품으로 대량생산되어 불티나게 팔렸다. 이 물건 덕에, 살갗이 벗겨질 정도로 때를 박박 미는 한국형 목욕 문화가 형성되고 정착했다. 언제나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다. 이 물건은 목욕비를 아끼기 위해 자주 씻기보다는 확실히 씻는 쪽을 택해야 했던 사람들의 요구에 정확히 부응했다.

한때 ‘때밀이 체험’을 위해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단도 있었다. 오늘날 제 몸의 묵은 때를 말끔히 벗겨내고야 말겠다는 의지만큼은 한국인이 세계 제일일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국가와 사회의 묵은 때를 말끔히 벗겨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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