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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박정희 예찬 교과서를 멈춰라 / 정용욱

등록 2016-12-22 18:22수정 2016-12-22 20:23

정용욱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학부모의 95.4%는 역사 공부가 자녀 교육에 중요하고, 또 60% 이상은 촛불집회와 같은 현장에 자녀와 동행하는 것이 역사 교육에 도움이 된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학부모의 생각에 민감해야 할 교육부는 광장의 촛불이 국정을 농단한 대통령을 탄핵 소추하게 만들고,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농단 사례의 하나로 지목되는 상황에서도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하고 있다. 국민들이 광장에서 촛불을 들어 새로운 역사를 쓰고, 그 촛불이 제대로 작동하는 민주주의를 열망하며, 또 그것을 회복해가는 과정에서 정부는 민주적인 교과서 편찬 원리를 난폭하게 유린했던 교과서를 ‘올바른 역사’라고 강변할 뿐만 아니라 미래의 주인들에게 강요하고 있다.

학계와 시민사회의 거듭되는 공개 요청도 아랑곳하지 않고 정부는 밀실에서 복면 집필을 통해 교과서를 제작했다. 유엔인권이사회가 교과서 편찬 과정의 공개를 통해서 국민의 알 권리와 문화 향유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말하고 국제사회가 이를 준용하지만, 정부는 그러한 역사교과서 편찬의 원칙 따위는 애시당초 안중에도 없었다. 그 결과물이 박정희 예찬 교과서라는 별칭이 붙게 된 국정 역사교과서다. ‘올바른 역사교과서’의 편찬은 비선에 의한 교과서 집필로 달성할 수밖에 없음을 스스로 증명한 셈이다.

박근혜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기도가 처음 공개되어 국민적 반대를 불러일으킨 것이 작년 가을이었다. 하지만 최근 밝혀졌듯이 박근혜 정부는 재작년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가 교육 현장에서 전면적으로 거부되자, 바로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 사실은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옹호 세력들이 국정화 작업을 통해 추구한 것은 시종일관 친일·독재 세력의 역사적 복권이자 수구세력의 정치적 결집이었지, 역사교육의 개선이 결코 아니었음을 의미한다. 최근 정부, 새누리당, 일부 수구 언론이 국정 역사교과서의 내용적 장점을 운운하며 국정화를 옹호하고 나선 것도 탄핵 정국에서 반칙을 써서라도 지지세력들을 결집하여 위기를 넘기고 자신들의 특권을 유지해보려는 정치적 기획이지 진심으로 역사교육을 걱정하기 때문이 아니다. 결국 역사교과서 국정화 작업은 역사학을 권력의 시녀이자 정치적 도구로 만드는 것이고, 그런 면에서 국정화 추진·옹호 세력의 역사의식은 스스로 역사의 주인이 되기 위해 광장에서 촛불을 든 시민들의 역사의식과는 정반대의 위치에 있다.

2017년은 박정희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추진 첫 단계부터 국정 역사교과서가 그 제단에 바치기 위한 제물이라는 소문이 심심찮게 나돌았다. 특히 개정된 교육과정이 적용되는 시기가 2018년임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규정을 어겨가며 유독 역사교과서만 2017년에 배포하겠다고 고집을 부리자 그 얘기는 더 이상 소문이 아니게 되었다. 역사교육의 목적은 역사를 통해 학생들의 자유롭고 비판적인 사유를 함양하는 것이다. 애초부터 박정희 예찬 교과서를 의도한 국정 역사교과서는 역사교육의 본령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비교육적 교과서다. 광장의 촛불은 열린 교과서, 시민이 주인인 교과서, 자유롭고 비판적인 역사의식을 지향하고 있고, 그 사회에서 비선 교과서, 권력의 시녀 노릇을 하는 교과서, 특정인에 대한 예찬을 추구하는 교과서가 설 공간은 그 어디에도 없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옹호 세력은 이제 자신의 이름을 국정농단의 부역자 명단에 올릴 것인지, 아니면 후대의 역사교육을 위해 시민사회의 요구를 수용해야 할지 결정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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