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박정희가 1963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시절에 쓴 글에 이런 구절이 있다. “/2등 객차에/ 프랑스 시집을 읽는/ 소녀야,/ 나는, 고운/ 네/ 손이 밉더라.” 박정희는 이 자작시에 대한 감상을 바로 밑에 써놓았다. “고운 손아, 너로 말미암아 우리는 그만큼 못살게 되었고, 빼앗기고 살아왔다. 전체 국민 1% 내외의 저 특권 지배층의 손을 보았는가. 고운 손은 우리의 적이다.” 미움이 얼마나 컸는지 박정희는 고운 손에 ‘증오의 탄환’을 발사하자고 쓰기까지 했다. 이런 시를 썼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던 걸까. 박정희는 집권기간 내내 ‘고운 손’을 탐했다. 마지막에는 안가의 호화로운 식탁에서 고운 손을 옆에 끼고 앉아 굳은살 박인 손들의 저항을 뭉개버릴 방법을 궁리하다가 심복의 총에 맞아 죽었다. 박정희는 저 1% 특권 지배층의 고운 손을 살찌웠다. 박정희 자신이 일하는 손으로 위장한 고운 손이었다. 그것도 반대파에 대한 증오심으로 뭉친 손이었다. 박정희의 고운 손은 유전인자가 돼 티끌만큼의 오염도 허락하지 않는 ‘성스러운 손’으로 재탄생했다. 청와대에 입성한 박근혜가 보여준 위생관념은 보통사람의 상상력을 한없이 초과하는 것이었다. 대통령 행차 때마다 화장실의 멀쩡한 변기가 뜯겨 나가고 새 변기가 설치됐다. 외국 순방 때면 최고급 호텔의 객실까지 리모델링했다. 침대를 바꾸고 조명등을 바꾸고 샤워 꼭지까지 교체했다. 세상만사가 그 극에 이르면 정반대로 뒤집히는 법이다. 성스러움은 상스러움이 됐다. 저 초인간적인 위생집착이야말로 썩어 문드러지는 혼의 증거다. 사람 냄새와 절연한 세상에서 혼자 고결하게 사는 삶은 그 자체로 병리적이다. 텅 빈 혼을 감싼 신비감의 안개 너머에 신기루처럼 서 있던 우상, 박근혜라는 우상은 사람 냄새로 가득한 촛불의 위력 앞에서 무너졌다. 주말이면 수십만개의 촛불 옆에서 태극기를 흔들어대는 집단이 우상의 몰락을 증언한다. 대통령이 가짜였고 껍데기였다는 냉혹한 진실이 드러날수록 더욱 격렬해지는, 대통령을 사모하는 사람들의 몸부림은 믿음의 붕괴를 어떻게든 외면해보려는 유사종교집단의 통성기도와 다르지 않다. 약속의 날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때 히스테리는 더 격심해진다. 그런 맹목의 우상숭배 뒤에 숨은 자들은 이 광증이 꺼지지 않도록 연료를 넣고 풀무질을 한다. 배후의 세력은 박근혜의 몸에서 비선실세라는 종양만 떼어내려고 하다가 그것이 안되니 박근혜를 버려서라도 박근혜 뒤의 더 큰 우상만큼은 지켜내려고 온갖 수를 짜낸다. ‘박정희가 최순실 게이트와 무슨 상관인가’ 하고 쏘아붙이는 <조선일보>를 보라. 수구기득권세력은 박정희라는 우상을 팔아 이권을 챙기고 세력을 불렸다. 그러나 수십년 동안 이 나라를 휘저었던 박정희 유령은 이제 관 속으로 들어가 영면할 때가 됐다. 박정희는 국민의 동의 없는, 다시 말해 헤게모니 없는 권력을 유지하려고 국가폭력을 총동원해 반대자들을 탄압했다. 재벌로부터 거두어들인 검은돈으로 유권자를 매수하고 충성부대를 양성했다. 박근혜 정권은 박정희 체제의 부패와 폭정을 압축해서 보여준 작은 박정희 체제였다. 박근혜는 성형한 박정희였다. 박근혜의 몰락과 함께 박정희도 몰락할 수밖에 없다. 수구세력은 그 이중의 몰락에서 박정희를 건져내 보려고 안간힘을 쓴다. 살아남으려는 발버둥이다. 박정희 유령이 다시는 인심을 홀리지 못하도록 관 뚜껑에 대못을 박는 일, 그 유령과 더불어 위세를 부리던 수구세력을 함께 매장하는 일이 촛불로 각성한 시민에게 남겨진 과제다.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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