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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전우용의 현대를 만든 물건들] 주사기

등록 2017-01-04 18:31수정 2017-01-04 21:16

전우용
역사학자

해방 직후부터 1970년대까지 군대, 직장, 학교 등에서는 매년 한두 차례씩 ‘단체 예방접종’이라는 행사를 치렀다. 6·25전쟁 중 군의관으로 복무했던 어떤 의사는 전쟁 중 가장 두려웠던 게 ‘주삿바늘’이라고 회고했다. 그가 두려워한 것은 바늘에 찔리는 고통이 아니라 중대병력 전체의 팔뚝을 들락날락거린 주삿바늘이 옮길 수도 있는 간염이었다. 반면 초등학생들의 두려움은 원초적이었다. 단체 예방접종이 있는 날이면, 누가 씩씩한 아이이며 누가 그렇지 못한 아이인지가 단박에 드러났다. 저학년생 다수는, 주삿바늘이 피부를 찌르기도 전에 울음을 터뜨리곤 했다.

동양 전통의학에 주사기로 혈관이나 피하에 직접 약을 주입하는 치료법이 있었다면, ‘좋은 약은 입에 쓰나 병을 다스리는 데에는 이롭다’는 말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동양 전통의학에서 먹는 것 외에 ‘약성’을 체내에 주입하는 방법으로는 뜸 정도가 있었을 뿐이다. 반면 서양에서는 AD 1세기에 로마 의사 켈수스가 주사기를 이용했다는 기록이 있고, 9세기에는 아라비아 의사 무실리가 유리관과 바늘을 이용한 피하주사기를 개발했다.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주사기는 1853년 프랑스 외과의사 샤를 프라바즈가 처음 만들었으며, 플라스틱 주사기는 1956년에야 탄생했다.

1877년 2월 부산에 일본 거류민을 위한 서양식 병원인 제생의원이 개원했는데, 주사기도 이때 한반도에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서양식 병원이 늘어남에 따라 주삿바늘을 체험하는 한국인도 늘어났다. 주사약은 먹는 약에 비해 효과가 빨랐으나 전통과 단절된 물건인데다가 치명적인 부작용을 수반하는 경우도 많아 대체로 기피 대상이었다. 그럼에도 20세기 벽두부터는 제 손으로 주사기를 쥐고 제 몸을 찌르는 사람도 생겨났는데, 그들은 거의가 마약중독자였다.

현대인은 주사기를 가장 무서워했던 어린 시절을 공유하는 사람들이다. 어른이라도 주삿바늘에 찔리는 건 유쾌한 경험이 아니다. 그러니 주사 맞기를 즐기는 사람이 있다면, ‘범상한’ 사람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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