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 사회] 맞절하는 사이 / 이라영

등록 2017-01-11 18:15수정 2017-01-11 19:09

이라영
예술사회학 연구자

하나의 맞절 사진을 보았다. 국회 청소노동자 직접고용 기념행사에서 국회 사무총장이 청소노동자들에게 큰절을 하자 이에 노동자들이 맞절로 화답하는 장면이었다. ‘지체 높은’ 정치인의 큰절 때문이 아니라, 예상치 못한 정치인의 낮은 자세에 의자에서 막 일어나 어쩔 줄 모르고 바닥을 향해 몸을 낮춘 노동자들의 모습 때문에 한참 바라보았다. 그들 대부분은 흔히 아줌마, 이모님, 어머님으로 불리는 여자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정부는 출산 지도가 아니라 여성의 경제활동이 처한 불안정성을 시각화하는 작업에 신경써야 한다.)

작년에 있었던 또 하나의 맞절을 떠올린다.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외주업체 직원이 전철에 치여 사망했을 때 피해자를 추모하기 위해 많은 시민들이 장례식장에 모여들었다. 자식의 상주가 된 부모와 그 부모를 향해 깊은 애도를 표하는 시민들이 서로 바닥에 바짝 엎드려 절을 했다. 비통함을 공유하는 연대와 애도의 맞절이다. 바닥을 알 수 없는 시커먼 슬픔에 대해 공감을 표하는 몸들이 가득한 현장이었다.

두 개의 맞절 사진은 직접고용과 간접고용을 둘러싼 비극과 희극이 교차하는 순간을 담고 있다. 애도하는 몸과 기쁨의 몸을 담은 두 이미지는 고용문제와 존엄이라는 화두를 소환한다. 마땅히 인간으로서 가져야 하는 존중받을 권리가 지극히 특별한 상황에서만 벌어지는 ‘사건’이 된 모습이다. 직접고용에 감사해야 하거나, 이미 이 세상을 떠난 상태에서 애통한 절을 받거나.

인간은 몸을 다양한 각도로 숙일 수 있는 동물이다. 직립보행하는 동물이 가진 몸의 언어다. 사회학자 김찬호는 <모멸감>에서 파울 클레의 ‘서로 상대방이 더 높다고 생각하는 두 사람이 만나다’라는 그림을 통해 몸을 낮추는 인간의 신체 언어를 직시한다. 인간은 고개를 숙이고, 허리를 숙이고, 무릎도 꿇을 수 있다. 이는 때로 강제된다. 비행기 승무원이나 패밀리 레스토랑의 직원들은 손님을 대할 때 몸을 낮추고 심지어는 무릎을 꿇고 주문을 받기도 한다.

몸을 숙이는 태도는 상대의 반응에 따라 예의가 되기도 하고 굴욕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한쪽이 존댓말을 해도 한쪽은 반말을 할 수 있는 문화에 길들여져 있다. ‘안녕하세요’라고 고개 숙여 인사하면 ‘그래’라고 대답해도 이상하지 않은 관계가 있다. 나이와 직위에 따라 인사를 꼿꼿하게 ‘받기만’ 해도 되는 사람들, 맞절이 불가능한 관계는 대부분 착취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인사 똑바로 안 했다고 찍히고, ‘눈 깔아’를 요구받거나 ‘알아서 긴다’.

앞서 언급한 사진과 달리 타인에 대한 모욕이 담긴 두 장의 사진을 기억한다. 2013년 말 김태흠 의원이 내려다보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 청소노동자들과 마주하던 장면. 국회 청소노동자라는 직업은 여느 장소의 청소노동자와 마찬가지로 ‘나이 많은 여성’이 주로 맡는다. 남성 정치인과 대부분의 여성 청소노동자가 대면한 그 순간의 사진은 계층과 성별의 위계가 교차하는 한장의 이미지다. 이와 더불어 2014년 김무성 의원이 무릎 꿇은 세월호 유가족을 외면하고 차에 오르던 사진 역시 타인에 대한 모멸을 실천하는 장면이다. 한쪽이 몸을 굽혔을 때 함께 굽히지 않은 이들이다. 비극을 외면하고 사람을 무시했다. 이 모든 행동은 하나의 ‘정치’였다.

자존감이 화두가 되는 사회를 조금 위험하게 여긴다. 무시하고 모욕하는 정치가 횡행하고 자존감은 ‘셀프’로 챙길 때, 공동체는 위험해진다. 많은 사람들이 타인을 향한 모욕에 집단 감염되었다. 맞절하는 관계는 더 많아져야 한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