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미국의 영화각본가인 돌턴 트럼보는 1953년에는 동료 작가의 이름으로, 1956년에는 예명으로 오스카상을 수상했다. 트럼보는 공산주의자 색출을 명목으로 결성된 반미활동조사위원회에서의 강요된 진술을 언론출판의 자유를 근거로 거부했고, 블랙리스트에 올라 업계에서 퇴출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익명으로 작가 활동을 이어나가는 대신 그는 그 일을 포기할 수도 있었다. 그랬다면 <로마의 휴일>은 세상에 없거나, 우리가 아는 것과는 다른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2015년에 영화 <트럼보>로 발표되었다. 머나먼 과거, 믿기 어려운 광풍이 휘몰아치던 어둠의 시대를 추억하듯이. 같은 2015년, 한국에서는 용산참사를 다룬 영화 <소수의견>이 2년간 개봉이 지연된 끝에 세상의 빛을 보았다. 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부터 정치적 콘텐츠 제작에 관여한 투자사 대표들은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받거나 구속됐다. 정부가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관리하고 있으며 투자자뿐만 아니라 정치적 콘텐츠에 관여한 배우, 연출자, 제작자의 향후 모든 작품에 연좌제를 적용하여 불이익을 준다는 소문이 떠돌고 있었다. 블랙리스트를 눈으로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누가 블랙리스트에 올랐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누구나 블랙리스트에 오를 수 있었다. 이 미지의 어둠은 어떤 위력을 발휘했을까? <소수의견>의 배급은 영화 완성까지 참여하지 않았던 시네마서비스에 갑작스레 떠넘겨졌다. <로마의 휴일>이 트럼보가 아닌 이언 헌터의 이름으로 세상에 발표되었듯이. 다른 영화와는 달리 <소수의견>의 크레디트에는 투자사의 이름이 없다. 모든 투자 단위들이 이 영화에 돈을 댔다는 사실을 비밀에 부쳐달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마치 진공에서 탄생한 물질처럼, <소수의견>은 공식적인 투자 없이 탄생한 최초의 상업영화가 됐다. 2015년 <소수의견>이 청룡영화상 각본상을 받게 되었을 때, 시상식 무대에 오른 나는 누구에게 감사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감사의 대상으로 지목되는 것만으로도 그들에게는 예기치 않은 위협이 될 수 있어서였다. 자기 이름을 쓸 수 없는 세상의 모든 유령 작가들. 나는 그들에게 공을 돌려야 했다. 정부가 운영하는 영화 모태펀드는 한국 영화 제작비의 40퍼센트 가까이를 차지하는 시장의 큰손이다. 투자 실적만을 평가하던 모태펀드는 <변호인>의 흥행 이후 운용 계획에 ‘투자심의위원회’라는 것을 삽입했고, 정부가 위촉한 전문가들이 개별 영화의 내용을 검토하고 투자집행 여부를 결정하게 되었다. 이 제도는 공정하게 운영되어 왔을까? 자본 검열 장치로 작동하진 않았을까? 작년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 국정감사에서 밝혀진 사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정부가 투자심의위원회에 위촉한 전문가들은 영화 전문가들이 아니라 관광대학원 교수, 행정학 박사, 정치연구자 등이다. 둘째, 이들은 투자심의위원회에서 거수기처럼 만장일치로 투자집행을 가결해 왔다. 셋째, 모태펀드 투자를 받지 못한 영화들은 아예 투자심의에 오르지도 못했다. 투자심의위원회가 열리기도 전에 촘촘한 필터로 ‘걸러진’ 것이다. 이 보이지 않는 필터가 블랙리스트였을까? 중요하지 않은 질문인지도 모른다. 블랙리스트가 정치비판 콘텐츠의 생산을 막기 위한 것이라면, 그것이 존재한다는 소문만으로도 목적은 달성되었다. 앞으로 몇 년간 개봉할 영화들은 백지처럼 정치성이 탈색되어 있다. 2015년을 기점으로 영화계에서 정치적 콘텐츠의 기획이 모조리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겨울이 지나가고 있지만 한동안 꽃샘추위가 기세를 부릴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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