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인 조윤선.’ 조윤선(51)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쓴 책을 보면 그렇다. “음악과 미술, 예술이란 무엇일까? 그건 느끼고 취하는 사람 누구나 주인이 될 수 있는 바람과 달과 같은 존재일 게다. (…) 달을 삼키고 바람도 보듬는 그런 마음의 부자로 살고 싶다.” 2007년 낸 <미술관에서 오페라를 만나다>는 예술 애호가로서 해박한 지식이 돋보였다. 오페라 동호회 회장답게, 공연 전문지 <객석>에 2년 동안 실은 글을 모았다.
2011년엔 <문화가 답이다>라는 책을 냈다. 국회의원 경험을 살려 “민간의 모든 영역은 문화로 소통한다”는 취지를 열정적으로 설파했다. “눈을 들어 멀리 앞을 내다보는 힘, 나는 문화에서 그 답을 찾았다”고 했다. 두 책에서 조윤선은 ‘나는 문화인이고, 문화정책에 답을 가지고 있다’고 얘기하는 듯했다. 출판사는 책 소개에서 “문화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그녀의 열정과 생각들을 고스란히 담아냈다”고 추어올렸다. 공교롭게도, 두 책 모두 전두환의 장남 전재국이 대표로 있는 ‘시공사’에서 펴냈다. 어쨌든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자 ‘조윤선이 문화부 수장을 꿈꾼다’는 얘기가 돌았다. ‘정치판 신데렐라’요 ‘박근혜의 여자’에다 ‘문화인’이기까지 하니까.
‘문화인’에서 ‘문화 파괴자’로 바뀐 건 순식간이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던 조 전 장관은 마침내 지난 9일 국회 청문회에서 두 손을 들었다. <문화가 답이다>를 낸 지 3년 뒤인 2014년 말 청와대 정무수석 시절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함께 1만여명의 명단 작성을 주도했다는 혐의다. 책에서 보인 예술적 식견과 문화정책의 비전은 어디로 갔을까. “느끼고 취하는 사람 누구나 주인이 될 수 있는” 문화는 박근혜 입맛에만 맞는 것이 됐고, “민간의 모든 영역이 소통한다던” 문화는 국공립이 독차지했다. 책에서 말하던 고매한 문화는 이제 차별과 배제라는 야만주의의 초췌한 얼굴로 남았다. 조윤선의 두 책은 ‘블랙 북’으로 읽힌다. 블랙 북은 국가 1급 기밀을 가리키는 말로 블랙리스트와는 조금 다르지만 ‘극비’라는 점에선 비슷하다. 손준현 대중문화팀 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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