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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전우용의 현대를 만든 물건들] 쓰레기

등록 2017-01-25 18:25수정 2017-01-25 21:12

전우용
역사학자

1896년 6월27일, 서울 돈의문(서대문)에 한성부 관찰사 명의의 방(榜)이 붙었다. 내용인즉 “길을 고친 후에는 길가에 더러운 물건과 온갖 그릇 깨진 것을 버리지 말며 물건들 파는 좌판을 늘어놓지 말며 대소변을 못 보게 하니, 만일 이 조목을 범한 자는 죄를 무겁게 다스리겠다”는 것이었다. 당시 고종은 러시아공사관에 있었고, 정부는 경운궁(덕수궁) 주변 도로를 신설, 정비하는 중이었다. 길가에 ‘더러운 물건’을 버리지 못하게 한 금령(禁令)은 이것이 최초였다. 그런데 이때의 ‘더러운 물건’이란 어떤 것들이었을까?

쓰레기란 ‘쓸어버리는 것들’이라는 뜻이다. 쓸모없어진 물건을 버리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지만, 옛날에는 그런 물건이 거의 없었다. 기근을 가까이 두고 살던 시절에, 음식물을 버리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고, 사람이 먹을 수 없는 것은 가축에게 먹였다. 낡아 못 쓰게 된 가구로는 다른 소품을 만들거나 정 못 쓰게 되면 땔감으로 썼다. 옷이 해지면 기워서 입었고, 기운 곳이 보기 흉할 정도로 많아지면 잘라내어 아이 옷을 만들었다. 아이 옷조차 닳으면 걸레로 썼고, 걸레로도 쓰기 어려울 정도가 되면 거지들에게 ‘발싸개’감으로 주었다. ‘거지발싸개’라는 말이 생긴 연유다. 깨진 그릇도 성벽 가까이에 쌓아 두어 유사시를 대비한 무기로 삼았다. 그러니 쓸어버리는 것은 먼지와 낙엽, 재 정도였는데, 그나마 농촌에서는 분뇨와 섞어 퇴비로 만들었다.

산업혁명 이전의 거의 모든 쓰레기는 늦어도 1년 안에 자연으로 환원되었다. 쓰레기가 엄청난 속도로 늘어나 지구를 덮기 시작한 것은 석탄이 나무와 숯을 대신하고, 잘 썩지 않는 물질이 발명되며, 사용가치가 남은 것들이 버려지면서부터였다. 지난 150년간, 한반도의 인구는 네 배쯤 늘었으나 1인당 쓰레기 배출량은 천 배 이상 늘었다.

자연으로 환원되지 않는 쓰레기와 함께 살아온 탓인지, 요즘에는 인성(人性)으로 환원되지 않는 유독(有毒)한 마음을 가진 사람도 계속 늘어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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