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전우용의 현대를 만든 물건들] 향수

등록 2017-02-01 18:29수정 2017-02-01 20:20

전우용
역사학자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아 계심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칼로 닦고 그 발에 입 맞추고 향유를 부으니…”(누가복음)

음악이 ‘천상의 소리’라면, 향기는 ‘신의 냄새’였다. 인류는 먼 옛날부터 신을 부르기 위해, 또는 특정인의 신성성을 입증하기 위해 향기를 이용해 왔다. 고대 지중해 주변 지역에서는 향기를 축적했다가 발산하는 물질로 향유를 만들어 썼는데, 재료가 귀하고 제조 과정이 번거로워 보물에 속했다. 예수 시대 ‘향유 담은 옥합’ 하나의 가치는 보통 사람의 1년치 노동력 가치에 상당했다고 한다.

알코올을 사용한 최초의 향수는 1370년께 헝가리의 수도사들이 왕비에게 바친 ‘헝가리 워터’였다. 16세기에는 알코올을 사용한 여러 종류의 향수가 개발되어 냄새만으로도 보통 사람과 확연히 구별되는 특별한 인간들을 양산했다. 인공 향료를 사용한 현대적 향수는 19세기부터 제조되었다.

우리나라에 향이 전래된 것은 삼국시대로 추정된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기원후 5세기 신라 눌지왕 때에 중국 양나라에서 향을 보내왔는데, 그 이름과 용도를 아는 사람이 없어 수소문한 끝에 고구려에서 몰래 들어온 중 묵호자에게 물어 비로소 알았다고 한다. 이후 향은 모든 제례의 필수품이 되었으며, 특별한 사람들에게 특별한 체취를 부착하는 용도로는 주로 사향 등을 넣은 주머니인 향낭이 사용되었다.

1897년 봄, 진고개(현재의 충무로)의 일본인 상점 구마모토회사에서 프랑스산 향수를 수입, 판매하기 시작했으나 한동안은 기생이나 쓰는 물건으로 천시되었다. 향수에 대한 대중적 편견이 사라진 것은 1960년대 이후이다. 오늘날에는 제 몸에서 나는 냄새를 은폐하기 위해 향수를 뿌리는 것이 당연한 예의처럼 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값비싼 향수라도 체취를 오랫동안 가리지는 못한다. 아무리 교묘한 언사로도 부패한 마음을 오랫동안 가리지는 못하는 것처럼.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