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순환협동조합 대안대학 학장 공간이론가 데이비드 하비가 쓴 <신자유주의 약사>에 따르면, 세계 강국 가운데 신자유주의를 가장 먼저 국가정책으로 채택한 것은 중국이었다. 신자유주의 노선을 채택한 강대국 지도자는 통상 영국의 대처 총리와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으로 알려져 있지만, 1978년 개혁개방을 표방한 중국의 덩샤오핑이 그런 정책을 먼저 실시했다는 것이다. 덩샤오핑의 노선은 ‘흑묘백묘론’으로도 불린다. 이것은 검든 희든 고양이는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논리로서, 경제만 발전시킬 수 있다면 사회주의 국가도 시장경제 노선을 마다할 것이 없다는 생각이다. 중국은 그에 따라 신자유주의적 발전 노선을 펼쳤고, 알다시피 이후 엄청난 경제적 발전을 이루었다. 지난해 학장으로 있는 대안대학 학생들과 중국 칭다오로 수학여행을 갔다가 조선인 여행 안내원한테 놀라운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칭다오에는 서울보다 더 고급한 아파트가 많으며, 그런 아파트 수십 채가 들어 있는 건물을 통째로 사들이는 부자까지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 고층아파트 건물이 수없이 올라가 있음을 생각하면, 중국에는 그런 부자가 곳곳에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런 상황을 놓고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론이 성공을 거둔 결과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고양이 이야기를 성공신화로 경험하는 것은 극소수일 수밖에 없다. 나는 지난 몇년간 중국에 가서 알게 된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 가운데서 자기 힘으로 아파트를 구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 쥐 잡는 고양이는 또다른 이야기에도 등장한다. 포괄적 공중의료정책을 펼친 것 등으로 2004년 캐나다 공영방송이 공모한 ‘가장 위대한 캐나다인’으로 선정된 토미 더글러스는 생쥐나라 이야기를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1962년 캐나다 의회에서 했다는 그의 이야기에서 생쥐들의 잘못은 고양이만 지도자로 뽑는다는 것이었다. 검은 고양이를 뽑았다가 호되게 당한 생쥐들은 흰 고양이를 대안으로 뽑았으나, 오히려 목숨을 더 많이 잃는다. 이후에도 생쥐들은 색깔을 번갈아 가며, 심지어 색깔이 뒤섞인 연정 형태의 고양이 정권도 탄생시켜 보지만, 결과는 생쥐 대학살뿐이었다. 생쥐들이 지도자를 뽑는 방식은 민주적이었다. 선거로 뽑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쥐나라 이야기는 민주적인 선거라고 해서 유권자들의 안녕과 행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고양이만 뽑게 되어 있다면, 선거 절차가 아무리 민주적이라 해도 죽어 나가는 것은 생쥐뿐인 것이다. 생쥐나라에서도 반란은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생쥐 한 마리가 왜 고양이만 우리 지도자로 뽑느냐, 이제는 생쥐 지도자도 뽑아보자고 당차게 나선 것이다. 하지만 그 생쥐는 다른 생쥐들에 의해 빨갱이로 몰려 감옥에 갇히고 만다. 비선실세 최순실의 국정농단으로 박근혜 게이트가 열리고 탄핵정국이 형성되면서 대선 일정도 앞당겨지게 되었다. 이로 인해 우리 국민은 다시 한번 새로운 정권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생쥐나라의 교훈을 되새겨보면, 선거를 치르게 된다고 우리가 꼭 좋은 정권을 탄생시킬지는 의문이다. 계속 자기들을 잡아먹는 고양이만 지도자로 뽑고, 막상 자기들 가운데서 지도자를 뽑아보자고 제안하는 생쥐는 감옥으로 보내버린 것이 생쥐나라의 한계였다. 한국의 유권자들은 그런 한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대선판이 열리자 많은 정치인들이 예비후보로 나서고 있다. 후보가 많은 만큼 공약도 풍성하다. 그 가운데는 경제를 살리겠다는 공약도 빠지지 않는다. 문제는 이런 약속이 흑묘백묘론과 어떻게 다른지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쥐 잡자는 것이 그런 논리인데, 지금 한국에는 고양이 밥이 된 생쥐들이 너무나도 많다. 비정규직이 된 노동자들, 차별받는 성소수자들, 복지의 사각지대로 몰려 자살을 선택하는 노인들, 흙수저가 된 청년들이 그들이다. 우리 국민은 대선에 나선 예비후보들이 생쥐 잡아먹을 고양이 후보가 아니라는 보장을 어떻게 받아낼 수 있을까? 그들이 과연 이재용과 같은 재벌 세력과의 유착을 끊어낼 것인지, 또 그런 기득권 세력을 비호해온 사법, 관료, 언론 권력을 민주적으로 통제할 것인지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은 지금 한국 사회가 덩샤오핑이 말한 고양이의 약속보다는 더글러스가 생쥐나라 이야기를 통해 보낸 경고를 경청할 필요가 더 크다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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