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 1970년대까지 남녀 불문하고 겨울철에 많이들 입는 목이 긴 스웨터를 ‘도쿠리’라고 불렀다. 도쿠리란 본래 주둥이 부분이 잘록한 술병을 뜻하는 일본어다. 당시에는 섬유의 탄성이 좋지 않아 이 옷을 입고 벗을 때에는 얼굴 전체가 짓눌리는 고약한 느낌을 받아야 했다. 게다가 정전기도 심해 입고 나서든 벗은 뒤에든 머리카락이 곤두서곤 했다. 인류는 수천년간 문화권과 시간대에 따라 여러 형태의 옷을 만들어 입었으나, 양팔을 끼고 앞섶을 끈이나 단추로 여미는 윗도리 형식은 거의 한결같았다. 남성의 바지와 여성의 치마도 입구 쪽을 엉덩이가 들어갈 정도로 넉넉하게 만들어 입은 뒤 허리 부분을 띠로 졸라매는 게 기본이었다. 그런데 끈으로 여미는 윗도리는 통풍이 너무 잘 되었고, 단추로 여미는 옷은 입고 벗는 데 손이 많이 갔다. 1893년, 시카고 만국박람회에 미국인 저드슨이 양쪽으로 늘어선 여러 개의 고리를 쉽게 맞물렸다 풀었다 할 수 있도록 고안한 잠금쇠를 출품했다. 그가 이 물건을 발명한 목적은 군화 끈을 맸다 풀었다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1912년, 양복점 주인 쿤모스는 이 물건을 오늘날과 같은 형태로 개량했으며, 1923년에는 굿리치 회사가 지퍼라는 이름을 창안했다. 우리나라에는 1930년대 중반께 일본산 셔츠와 함께 자쿠라는 이름으로 도입되었는데, 자쿠는 공작물을 고정시키는 기구인 chuck(척)의 일본식 발음이다. 당시 모 신문 ‘여성정보란’에는 “셔츠가 해져도 자쿠는 떼내어 다른 용도로 쓰라”고 권유하는 기사가 실렸으나, 셔츠보다 자쿠의 수명이 길었는지는 의문이다. 국산 지퍼는 6·25전쟁 휴전 직후 서울 노량진에서 처음 생산되었다. 지퍼는 옷의 형태뿐 아니라 입고 벗는 문화에도 혁명적인 변화를 초래했다. 이 물건은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신속성을 미덕으로 삼는 현대와 잘 어울린다. 옷을 걸치고 띠를 안 매는 걸 창피(猖披)라 한다. 창피를 모르는 사람이 많아진 데에도, 지퍼가 기여한 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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