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노동자 ‘공짜밥’이 화제다. 논란을 촉발한 건 ‘기본소득’. 부자든 백수든 국민이면 돈을 주자는 기막힌 내용이다. 그런데 대한민국 15살 이상 인구 4341만명 중 비경제활동 인구는 1616만명, 실업자는 101만2000명으로 무려 1718만1000명이 백수다. 10명 중 4명은 논다. 그럼에도 세상이 안 망하고 백수가 굶어 죽지 않으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논다고 하니 듣는 백수 기분이 점점 나빠진다. ‘백수가 과로사 한다’는 말도 모르나. 소위 ‘전업주부’에게 ‘너는 집에 가만히 있으면서 뭐하냐?’ 비난한다면 ‘너는 퇴근이라도 하지!’라는 핀잔을 듣기 십상이다. 출산과 육아에, 배우자가 퇴근하면 밥 주고 섹스까지 해준다. 가사노동자들에게 임금을 지급하면 얼마일까? 법원은 전업주부의 교통사고 피해보상금을 계산할 때 일용직 노동자 평균임금을 기준으로 제시했다. 일용노임단가는 10만2628원, 전업주부는 휴일이 없으니 연봉은 3745만원이다. 연장, 야간, 연차, 휴일수당 퇴직금은 뺐다. 취준생들은 학점, 토익 등 좋은 인재가 되기 위해 자기 돈 주고 밤낮없이 공부하지만, 기업과 국가는 단군 이래 최대 스펙의 노동력을 공짜로 가진다. 되레 학원비, 응시료, 등록금, 빚 등으로 돈을 빼간다. 할 일 없어 보이는 집단, ‘운동권’도 있다. 김기춘이 좌파는 잘 먹는다 했지만 최저임금 받는 것도 감지덕지다. 알바노조는 최근 맥도날드 망원점의 임금체불 사건을 이슈화해서 점주가 임금을 지급하게 만들었다. 체불액이 1억5000만원이니 노무사 수수료 5%로 치면 750만원의 가치다. 국민들이 한파를 뚫고 벌인 촛불집회는 그야말로 중노동인데, 우리가 만든 민주주의의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조차 없다. 누군가의 친구, 애인처럼 존재만으로 가치 있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정신과 의사가 할 수 없는 정서적 지지를 파트너에게 보낸다. 트럼프의 트위트를 리트위트하는 ‘트잉여’들은 미디어를 만들고, 오늘 당신이 페이스북에 올린 포스팅은 저커버그의 수익에 기여한다. 알파고가 학습한 기보는 승부에서 패배한 수많은 기사들이 흘린 땀과 눈물의 기록인데, 구글이 그냥 가져간다. 인류는 알파고를 보며 구글의 위대함이 아니라 패배자의 가치를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혹자는 공짜밥의 대안으로 ‘심사’를 꼽는다. 얼마 전, 전세임대주택 신청서를 작성하다 집 안에 화장실과 주방이 없어야 만점인 채점표를 봤다. 소득이 지원기준보다 높아지면 어찌 되나 물으니 탈락이란다. 세상이 도움을 주고 싶을 만큼 열심히 불쌍해져야 받을 수 있는 게 ‘복지’인 셈이다. 그래서 모두가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는 한국엔 가난이 없는 것처럼 보이며 공시생이 매일 커피 사들고 공부하는 게 사치로 비난받는 세상이 됐다. 기본소득은 이런 비난에 ‘당신이 비록 낙오자라도, 좋아하는 커피 한잔 먹을 수 있는 욕망과 존엄이 있다’고 사회구성원 모두가 반박해주는 제도다. 문제는 공짜밥이 아니라 공짜노동이다. 진짜 놀고먹는 사람은 따로 있다. 불로소득을 가져가는 투기꾼, 공동체가 만든 가치를 공짜로 가져가는 대기업이다. 건물주의 집값은 누군가가 10년 동안 모은 돈이고, 주주의 배당금은 노동자와 실업자에게 돌아갔어야 할 임금이며, 백수들의 노동은 사회가 지불하지 않은 체불임금이다. 이제 떼인 돈을 돌려받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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