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 6·25전쟁 중에 생겨나 지금껏 사용되는 속어 중에 ‘나이롱환자’라는 게 있다. 의사나 간호사, 보험회사 직원이 보이면 중환자가 되었다가, 그들이 사라지면 건강한 사람으로 돌변하는 특이한 환자를 말하는데, 전해들은 바에 따르면 자동차 접촉사고 환자 중에 특히 많다고 한다. 병이 깊어졌다 나았다를 반복하는 게 나일론 원사의 탁월한 신축성과 빼닮았기 때문에 생긴 말이다. 1935년, 하버드대학 화학과 교수 월리스 커러더스와 듀폰사 연구팀은 최초의 화학섬유인 나일론을 만드는 데에 성공했다. 이 섬유는 1938년 뉴욕박람회에 처음 소개되었으며, 이듬해부터는 “거미줄보다 가늘고 강철보다 강하다”라는 광고 카피와 함께 판매되었다. 이 신물질은 발매 즉시 일본에도 수입되었으며, 그중 일부가 한반도에도 들어왔다. 당시 이 물질에 관심을 기울인 한국인은 목재에서 추출한 인조견사로 직물을 만들던 업자들뿐이었다. 게다가 곧 태평양전쟁이 일어나 미·일 무역이 전면 중단되었기 때문에 나일론을 구경해본 한국인은 극히 드물었다. 한국인들 사이에 나일론 섬유에 관한 소문이 널리 퍼지기 시작한 것은 긴급 구호물자 박스를 매달고 떨어진 낙하산을 접한 사람들이 생긴 뒤부터였다. 휴전 이후에도 미국은 쓸모없게 된 낙하산을 원조 물자로 보내주었다. 이 물건을 얻은 사람들은 그를 잘라내어 머플러로 만들어 목에 감고 다녔다. 뒤이어 일본에서 나일론이 수입되자, 한국인들의 의생활 전반에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나일론은 질기고 손이 덜 간다는 장점으로 인해 양말, 셔츠, 블라우스, 한복 등 옷의 종류와 형태를 가리지 않고 폭넓게 사용되었다. 1956년부터는 국산 나일론이 생산되기 시작했다. 대중소비시대가 열린 뒤로 나일론을 비롯한 화학섬유는 천시되는 경향이지만, 아직도 스타킹 등 높은 신축성을 요구하는 제품에는 나일론이 빠지지 않는다. 자기 편에게는 한없이 관대하고 자기 편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가혹한 ‘이중적 도덕률’로 무장한 사람이 많아진 것도, ‘나일론 시대’가 남긴 후유증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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