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전우용의 현대를 만든 물건들] 나일론

등록 2017-02-15 18:43수정 2017-02-15 21:57

전우용
역사학자

6·25전쟁 중에 생겨나 지금껏 사용되는 속어 중에 ‘나이롱환자’라는 게 있다. 의사나 간호사, 보험회사 직원이 보이면 중환자가 되었다가, 그들이 사라지면 건강한 사람으로 돌변하는 특이한 환자를 말하는데, 전해들은 바에 따르면 자동차 접촉사고 환자 중에 특히 많다고 한다. 병이 깊어졌다 나았다를 반복하는 게 나일론 원사의 탁월한 신축성과 빼닮았기 때문에 생긴 말이다.

1935년, 하버드대학 화학과 교수 월리스 커러더스와 듀폰사 연구팀은 최초의 화학섬유인 나일론을 만드는 데에 성공했다. 이 섬유는 1938년 뉴욕박람회에 처음 소개되었으며, 이듬해부터는 “거미줄보다 가늘고 강철보다 강하다”라는 광고 카피와 함께 판매되었다. 이 신물질은 발매 즉시 일본에도 수입되었으며, 그중 일부가 한반도에도 들어왔다. 당시 이 물질에 관심을 기울인 한국인은 목재에서 추출한 인조견사로 직물을 만들던 업자들뿐이었다. 게다가 곧 태평양전쟁이 일어나 미·일 무역이 전면 중단되었기 때문에 나일론을 구경해본 한국인은 극히 드물었다.

한국인들 사이에 나일론 섬유에 관한 소문이 널리 퍼지기 시작한 것은 긴급 구호물자 박스를 매달고 떨어진 낙하산을 접한 사람들이 생긴 뒤부터였다. 휴전 이후에도 미국은 쓸모없게 된 낙하산을 원조 물자로 보내주었다. 이 물건을 얻은 사람들은 그를 잘라내어 머플러로 만들어 목에 감고 다녔다. 뒤이어 일본에서 나일론이 수입되자, 한국인들의 의생활 전반에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나일론은 질기고 손이 덜 간다는 장점으로 인해 양말, 셔츠, 블라우스, 한복 등 옷의 종류와 형태를 가리지 않고 폭넓게 사용되었다. 1956년부터는 국산 나일론이 생산되기 시작했다.

대중소비시대가 열린 뒤로 나일론을 비롯한 화학섬유는 천시되는 경향이지만, 아직도 스타킹 등 높은 신축성을 요구하는 제품에는 나일론이 빠지지 않는다. 자기 편에게는 한없이 관대하고 자기 편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가혹한 ‘이중적 도덕률’로 무장한 사람이 많아진 것도, ‘나일론 시대’가 남긴 후유증은 아닐까?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