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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전우용의 현대를 만든 물건들] 도로표지판

등록 2017-02-22 18:25수정 2017-02-22 20:44

전우용
역사학자

“동서남북도 분간 못 한다.” 옛날 어리석은 사람을 조롱할 때 쓰던 말이다. 목적지를 정하고 발을 떼려면 먼저 방향을 알아야 했고, 방향을 알려면 하늘에 떠 있는 해와 달의 위치를 살피고, 땅에 솟은 산의 형상을 보아야 했다. 그래서 “천지 분간 못 한다”는 말도 같은 뜻으로 사용되었다. 천지 분간 못 하는 사람에게 목적지의 방향과 남은 거리를 알려주는 시설은 따로 없었다. 옛날에는 자연이 곧 도로표지판이었다.

조선총독부가 근대적 측량기술에 의거하여 한반도 전역의 농지와 임야 면적을 상세히 조사하던 1914년, 조선총독부고시 제135호로 ‘경성, 인천, 군산, 대구, 부산, 마산, 평양, 진남포, 원산 및 청진 시가지의 원표(元標) 위치 및 1, 2등 도로를 정하는 건’이 공포되었다. 이에 따라 각 도시 경찰서 앞에 두께 1척, 높이 1장의 목재 도로원표가 설치되었다. 다만 서울의 도로원표는 광화문통 네거리, 현재 충무공 동상이 있는 곳에 자리잡았다. 이곳이 한국의 역사적, 상징적 중심지임을 감안하고, 조선총독부 청사를 광화문 자리에 건립한다는 구상에 따른 예외적 조치였다. 도로원표에는 각 도시 간의 도로상 거리와 방향을 새겼다.

주요 도시의 도로가 자동차 중심으로 개편된 1930년께, 길 한복판에 있던 도로원표들은 길가로 밀려났고, 대신 자동차 운전자가 쉽게 알아볼 수 있는 큰 표지판들이 등장했다. 이 표지판이 ‘안내’ 기능을 넘어 ‘규제’ 기능까지 갖게 된 것은 1938년 조선총독부가 도로취체규칙을 개정한 뒤다. 이후 도로표지판은 꾸준히 늘어났지만 1970년대까지는 서울에서조차도 “도로표지판이 너무 적어 길 찾기 어렵다”고 불평하는 사람이 많았다.

고층빌딩의 숲이 된 도시, 미로처럼 얽히며 팔방으로 뻗은 도로, 늘어난 자동차 등으로 인해 80년대 이후 도로표지판은 급증했고, 더불어 이 물건 없이는 길을 못 찾는 사람도 늘어났다. 표지판만 보고 길 찾는 데 익숙해졌기에, 천지 분간 못 하고 ‘가짜뉴스’에 속아 엉뚱한 길로 향하는 사람이 많은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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