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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전우용의 현대를 만든 물건들] 의치

등록 2017-03-15 18:11수정 2017-03-15 21:01

전우용
역사학자

“인간은 살기 위해 먹는가, 먹기 위해 사는가?”는 아주 오래된 우문이지만, 이에 대해서는 영원히 현답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잘 먹기 위해서는 잘 씹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잘 씹지 못하면 잘 먹을 수 없고, 잘 먹지 못하면 잘 살 수 없다. 이가 빠지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쇠약해지고 삶의 질이 급격히 저하되는 것은 호랑이만이 아니다. 이가 빠지기까지의 과정도 매우 고통스러웠다. 오죽했으면 “앓던 이 빠진 듯하다”라는 말이 나왔을까? 게다가 사람의 이는 무려 32개이다.

인류는 먼 옛날부터 이가 빠지는 시점을 늦추기 위해 여러 방법을 찾고 실천했으나, 특별한 디엔에이(DNA)의 은총을 받지 않는 한 온전한 이로 노년기를 보낼 수는 없었다. 이 빠진 자리에 상아나 소의 이빨로 의치(義齒)를 만들어 심는 기술은 2500년쯤 전에 개발되었고, 일본에서도 바쿠후 시대에는 나무로 의치를 만들어 넣는 입치사(入齒士)들이 전문직으로 대접받았으나, 우리나라에서는 19세기 말까지도 이런 시술이 있었다는 기록이 없다. 현대적인 틀니를 처음 만든 이는 프랑스인 피에르 포샤르(1678~1761)인데, 1885년 한 미국인이 식사 후 이 물건을 입안에서 꺼내는 것을 본 한국인들은 도깨비를 대한 양 기겁했다.

한반도에 근대적 치과의원이 처음 문을 연 것은 1893년, 일본인 입치사가 개업한 것은 1902년이다. 1902년 당시 순금 입치 비용은 2~10원, 도기 틀기는 6~10원이었다. 만 51세 되던 해인 1903년 앞니 하나를 잃은 고종은 일본에서 개업 중이던 미국인 치과의사 소어스(J. Souers)를 초빙하여 사기질 의치를 해 넣었다. 한국인 입치사는 1907년에 처음 출현했고, 1914년에는 한국인 치과의사도 개업했다.

의치는 노인들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시대를 여는 데에 빼놓을 수 없는 공을 세운 물건이다. 그런데 요즘의 세태를 보면, 이 물건에는 이가 빠지기 시작하면 더 이상 완력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는 평범한 진실을 잊게 만드는 묘용도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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