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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2030 잠금해제] 탄핵, 민주주의, 그리고 계속 ‘페미니즘’ / 오혜진

등록 2017-03-19 19:22수정 2017-03-19 19:34

오혜진
문화연구자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던 역사적 순간은 이정미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의 뒷머리에 말린 두 개의 헤어롤로 기억될 것 같다. 그것들은 당연히, 가장 긴박한 순간에조차 ‘올림머리’를 고수하며 정치적 직무를 방기해온 누군가를 떠올리게 했다. 게다가 ‘헤어롤’은 일과 자기돌봄 모두를 해내는 ‘슈퍼우먼’의 표상이면서도, 고위층 여성조차 사회가 규율한 ‘여성화’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이중구속의 상징으로도 읽혔다.

문제적이었던 것은, 이정미의 ‘헤어롤’과 박근혜의 ‘올림머리’를 ‘여성성’의 두 속성으로 간단히 환원·대비시키는 논의들이었다. ‘헤어롤’은 ‘혼자 머리손질을 하는 소박하고 개념 있는 여성’의 상징으로, ‘올림머리’는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하고 사치스러운 여성’의 상징으로 대별된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국회의원은 한 시국강연회에서 “박근혜가 실추시킨 여성의 리더십을 이정미 재판관이 다시 세웠다”고도 했다. 결국 많은 언론이 내세운 “헌법밀당녀”라는 헤드라인에서 보듯, 이 모든 건 다시 ‘여성’의 문제로, ‘여성(성)’의 종류를 나누려는 의지로 귀속되고 있었다.

뭐가 이리 간단할까. ‘여성’이라는 범주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조건들의 경합과 공존을 직시하는 것이 그토록 어려울까. 박근혜의 정치적 무능과 부패를 그녀의 ‘여성성’으로 환원해 비난하던 일부 진보남성들의 논리는 박근혜를 공적 인물이 아니라 ‘여성’으로 호명해 비호하고자 했던 박근혜 쪽 변호사의 논리와 얼마나 달랐던가. 탄핵반대 집회에서 ‘페미니즘’이 외쳐진 건, 놀랍게도 페미니스트들이 페미니즘을 대중화하는 데 성공해서가 아니라, 남성들이 박근혜의 온갖 부정적 면모를 모두 ‘여성(성)’이라는 범주로 환원시켰기 때문이다.

또 다른 에피소드를 떠올려보자. 한 미국인 남자 교수가 자택에서 박근혜 탄핵 소식을 전할 때 난입(?)한 아이들과 이를 막으려던 한국인 아내로 인해 발생한 방송사고가 있었다. 이를 두고 대중은 두 가지 가상의 각본을 만들어냈다. 아이들을 저지하던 그 여성이 ‘보모’일 것이라는 가정과, 그 교수가 ‘여성’이었다면 펼쳐졌을 전혀 다른 상황에 대한 가정이다. 아시아인이 서구 엘리트 남성의 부인일 리 없다는 인종적 편견, 방송을 전한 교수가 ‘여성’이었다면 그녀 스스로 아이와 남편을 돌보며 탄핵 소식을 전해야 했을 것이라는 것이 그 상상의 내용이었다. ‘여성’과 연루되어 있고, ‘여성’만큼 강력하게 작동하는 인종적·계급적 요소의 배치를 보여주는 사례다.

페미니즘이 누차 몰두해온 것도 바로 이 문제다. ‘여성’은 인종·계급·장애·지역·세대·성별·섹슈얼리티·국가·종교 등 다양한 요소와 연루된 관계적 범주라는 것. ‘여성’이라는 범주를 여러 ‘정체성’들이 교차하는 장소로 보는 ‘교차성’ 이론, ‘정체성’의 고정성·불변성에 이의를 제기하며 퀴어 연구에서 제기한 ‘배치’(assemblage) 개념 등의 이론적 시도들이 있다.

여성혐오 정국을 거쳐 탄핵으로까지 귀결된 이번 페미니스트들의 민주주의가 남긴 교훈은 바로 이 같은 페미니즘과 퀴어 이론의 지속적인 갱신에 힘입은 것이다. ‘성’이 ‘본질적 실체’가 아니라 다양한 몸의 실천과 사회문화적 배치 가운데 작동하는 것이라는 점을 기억할 때, 이제 우리에게 남겨진 문제들, 여성혐오와 ‘위안부’, 그리고 여성정치의 문제 등이 새로운 차원에서 논의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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