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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전우용의 현대를 만든 물건들] 침대

등록 2017-03-29 18:38수정 2017-03-29 20:55

전우용
역사학자

현대 한국어에서 “방에 들어가”라는 말 다음에는 대개 “자라”가 붙는다. “공부해라”도 자주 붙지만, 이는 상대가 학생일 경우에 국한된다. 아파트 평면도에서 ‘방’은 전부 침실 1, 2, 3으로 표기된다. 대도시 교외의 주택단지들은 ‘베드타운’, 즉 ‘침대도시’로 불린다. 현대 한국의 표준적 주택에서 ‘방’은 ‘잠자는 곳’과 대략 같은 의미다.

본래 한국 주택에서 ‘방’은 모든 생산 소비 교류 활동을 포용하는 복합공간이었다. 각 방에는 사랑방, 안방, 건넌방, 뒷방 등의 이름이 붙었는데, 이는 방의 주택 내 위치와 주된 사용자의 가족 내 지위를 표시하는 것이었다. 용도는 주된 사용자의 생활양식에 규정되었으니, 사랑방에는 가끔 남자 손님들이 찾아왔고, 안방에서는 종종 동네 여자들이 모여 앉아 함께 일했다.

크지 않은 방을 여러 용도로 쓸 수 있게 해 준 것은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침구였다. 사람이 자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는 일이 요 깔기였고, 일어나자마자 하는 일은 이불 개기였다. 물론 예외는 언제나 있는 법이고 지금도 이렇게 하루를 시작하고 마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지만.

우리나라에 표준적인 방 면적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서양식 침대가 처음 들어온 것은 개항 직후인데, 한국인들은 이 물건을 그리 반기지 않았다. 구들장을 덥히는 직접 난방 시스템이 이 물건과 어울리지 않았던데다가, 이 물건이 처음 들어간 곳이 주로 병원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가뜩이나 좁은 집에서 방의 용도를 제한한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그러나 한국형 보일러가 개발되고 아파트가 표준적 주거유형으로 자리 잡으면서, 침대는 거의 모든 방에 침투했다. 서구보다 인구밀도가 훨씬 높은 지역에서 사람마다 침대를 가지려면, 주택의 층고를 높이는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침대는 가정생활이던 사생활의 영역을 ‘개인생활’로 바꾸어놓았다. ‘자기만의 공간’에 갇힌 채 교류와 공감 능력이 줄어든 인간이 늘어난 데에도, 침대가 책임질 몫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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