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강내희 칼럼] 봄 같지 않은 봄의 미세먼지

등록 2017-04-02 19:27수정 2017-04-02 22:42

강내희

한국에는 지금 숨도 제대로 못 쉬는 사람이 많다. 차별받는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 일자리 못 구한 청년층, 가계부채에 시달리는 자영업자, 빈곤에 내몰린 노인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대부분 사회적 적폐의 피해자에 해당한다. 적폐는 대체로 정치경제적 문제이고, 미세먼지는 환경 문제이니 물론 둘의 인과관계를 섣불리 예단할 수는 없다.

봄이 왔지만 봄 같지 않다. 새로 이사한 동네 뒷산에 산수유와 진달래가 핀 것을 보면 봄이 안 왔을 리는 없다. 그러나 요즘은 봄이 봄답지 않게 느껴진다. 날씨, 특히 오염된 공기 때문이다. 우리 동네에서는 북한산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보인다. 하지만 볼 때마다 산은 희뿌연 안개로 덮여 있다. 그 안개가 진짜 안개가 아님을 나는 물론 안다.

해마다 이때쯤이면 어렸을 적 고향 마을 들판에 아스라이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것을 본 기억이 나곤 한다. 당시 본 고향 산의 진달래, 맡았던 풀 향기, 맨발에 부드럽게 밟히던 흙, 마시면 싱그럽던 공기도 함께 되새겨지면서 말이다. 그 시절 봄을 맞는 것은 늘 축복이었다. 천지사방에 생명력이 넘쳐나, 봄철만 되면 숨을 마냥 들이쉬고 싶기도 했다.

인간의 삶은 숨 하나로, 다시 말해 큰 숨 한 번으로 끝난다고 볼 수 있다. 태어나며 들이마신 숨을 떠날 때 내쉬고 가는 것이 인생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숨을 내쉬기까지 우리는 그래서 그 한 번의 숨을 유지하기 위해 들숨과 날숨을 끊임없이 반복해야 한다. 그러나 요즘은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야 하는 이 일을 하는 것이 어렵고 무서워져 버렸다. 미세먼지가 갈수록 기승이기 때문이다.

미세먼지는 크기가 10마이크로미터 이하 2.5마이크로미터 이상으로 맨눈으로는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다. 초미세먼지의 크기는 더 작아서 2.5마이크로미터 이하다. 하지만 몸에 들어오면 이들 먼지는 주요 사망 원인으로 꼽히는 암, 뇌졸중, 치매, 호흡기질환 등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에는 눈에 선하게 들어오던 산이 뿌옇게 보이는 이유도 이런 유해 물질을 가득 품은 매연 때문일 테니 섬뜩하지 않은가.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는 올 들어 석 달 사이에 85차례나 미세먼지 경고가 내려졌다는 사실이 말해주고 있다. 지금 서울은 세계 주요 도시 가운데 공기질이 최악 수준이다. 지난달 29일 <파이낸셜 타임스>는 세계 도시의 공기오염 상황을 추적하는 에어비주얼의 발표를 인용해 서울이 중국의 베이징, 인도의 뉴델리와 함께 “세계 3대 오염 도시”로 꼽혔다는 놀라운 보도를 내놓았다. 더 충격적인 것은 그동안 오염의 원인을 중국 탓으로 돌리곤 하던 한국 정부의 설명과는 달리, 국내 미세먼지 가운데 중국이 책임질 부분은 20퍼센트뿐이라는 것이다. 같은 신문은 2060년까지 한국에서 대기오염으로 900만명이 목숨을 잃을 것이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예측도 전했다.

지난겨울 우리 사회는 ‘박근혜 없는 봄’을 고대하며 주말 촛불집회를 수십 차례 열었고, 드디어 그의 탄핵과 구속을 지켜봤다. 우연인 듯 필연인 듯 304명 목숨을 앗아간 사고 선박 세월호가 대통령이 탄핵되던 날 떠올랐으며, 그가 구속되던 날은 침몰 1081일째에 목포항으로 되돌아와 미수습자 9명을 찾을 희망도 생겨났다. 그러나 그래도 올봄이 봄답다 싶지 않은 것은 탄핵당한 대통령을 만들어낸 우리 사회의 적폐가 곳곳에 쌓여 있고, 그것이 미세먼지처럼 느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에는 지금 숨도 제대로 못 쉬는 사람이 많다. 차별받는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 일자리 못 구한 청년층, 가계부채에 시달리는 자영업자, 빈곤에 내몰린 노인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대부분 사회적 적폐의 피해자에 해당한다. 적폐는 대체로 정치경제적 문제이고, 미세먼지는 환경 문제이니 물론 둘의 인과관계를 섣불리 예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정치경제적 적폐에 노출될수록 환경오염의 피해를 입을 확률이 더 높다는 것 또한 부인하긴 어렵다.

문제는 이 결과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숨 쉬는 것도 무서운 상황에 처한다는 것이다. 대기 오염을 막으려면 석탄, 경유 등의 소비를 줄이고 다른 오염물질의 통제도 함께 필요하다. 하지만 정부는 지금도 석탄화력발전소 증설을 계획하고 있고, 노후 경유차 교체 노력 등은 등한시하고 있다.

사람이 살면서 숨도 제대로 못 쉰다면 저주다. 적폐가 청산되지 않으면 미세먼지의 기승도 그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 봄 같지 않은 봄을 계속 맞아야 한다면, 한국은 더 이상 살 곳이 못 된다. 이런 사태를 막으려면 적폐를 청산하고 미세먼지를 줄일 사회적 대책이 시급하다. 봄 같지 않은 봄날을 맞아, 사회적 적폐와 미세먼지를 한꺼번에 날려 보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지식순환협동조합 대안대학 학장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