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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전우용의 현대를 만든 물건들] 프라이팬

등록 2017-04-05 19:09수정 2017-04-05 20:23

전우용
역사학자

“송아지 몰고 오며 바라보던 진달래도 저녁노을처럼 산을 둘러 퍼질 것을. 어마씨 그리운 솜씨에 향그러운 꽃지짐.”(김상옥의 시조 ‘사향’(思鄕) 중)

쌀은 떨어지고 보리 수확까지는 아직 기다려야 하는 봄이면, 들로 산으로 돌아다니며 꽃잎과 들풀까지 따서 주린 배를 달래던 아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찹쌀가루 반죽 위에 과실과 꽃잎 등을 얹은 뒤 기름 두른 무쇠 가마솥 뚜껑 위에서 지진 ‘꽃지짐’을 별미로 먹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 이처럼 살림에 여유가 있는 집에서도 기름을 함부로 쓸 수는 없었다. 기름은 먼저 솜이나 천에 묻힌 뒤 솥뚜껑에 기름기가 살짝 비칠 정도로 아주 조금, 조심스레 발라야 하는 귀한 식재료였다.

인류가 동식물에서 채취한 기름으로 다른 식재료를 익혀 먹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2500년께부터로 추정된다. 식물성 기름의 원료로는 올리브와 깨가 널리 사용되었는데, 채취 과정이 번거로워 아무나 쉽게 쓸 수 있는 재료는 아니었다. 기름 바른 음식은 귀한 음식이었으니, 우리나라에서도 제상에는 반드시 기름에 지진 ‘전’을 올려야 했다.

한국인들이 지지고 볶는 정도를 넘어 조리 도중에 ‘튀길’ 만큼 많은 기름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일제강점 전후다. 고기나 채소에 밀가루 반죽을 입힌 뒤 기름에 담가 튀기는 조리법은 16세기 포르투갈에서 일본에 전래되었는데, 일본인들은 이렇게 만든 음식에 덴푸라(天麩羅)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음식과 더불어 무쇠 솥뚜껑보다 훨씬 작은 튀김용 조리도구인 프라이팬도 도입되었는데, 해방 직후까지도 이 물건을 소장한 집은 드물었다.

1960~70년대 티브이 연예 프로그램 사회자로 이름을 날린 곽규석의 예명은 ‘후라이보이’였다. 당시 기름에 튀긴다는 뜻의 영단어 fry는 ‘뻥’, ‘구라’ 등과 함께 거짓말, 실없는 소리, 농담을 의미하는 속어로 사용되었다. 지금은 집집마다 프라이팬 몇 개씩은 가진 시대다. 튀긴 음식에 익숙해져서일까? 거짓말로 버무려 튀긴 뉴스들을 사실인 양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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